[취재파일] 전당포 호황의 이면..'명품 지르는 88만원 세대'

하대석 기자 2013. 5. 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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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에 20~30대 명품족 '북적', 전당포, 부유층 '현금지급기'로 변신

최근 여러 언론사가 전당포의 변신에 대한 기사들을 보도하면서 주로 뽑은 헤드라인입니다.

처음 쓴 모 신문기사를 참고해서 빨리 고쳐써서 다들 그렇게 제목을 뽑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8뉴스 제작을 위해 찾은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처음 찾은 곳은 요즘 생겨나는 전당포의 가장 많은 유형인 압구정동의 한 '명품 전당포'. 요즘 강남과 여의도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고명품샵과 전당포를 결합한 업태입니다. 중고 판매가 4800만원 짜리 에르메스 핸드백, 중고가 1200만원 짜리 브레게 퀸오브네이플즈 시계 등 천만원 단위 고가 중고명품들이 즐비했습니다.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등 상당수 고가품은 고객이 담보로 맡긴 뒤 되찾아가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이 곳의 이자율은 월 3.25%, 1년엔 법정최고금리인 39%입니다. 은행은 물론 카드론, 저축은행 등 그 어떤 금융상품도 39% 보다는 금리가 낮습니다. 저축은행이 신용등급 8-10등급 고객에게 빌려주는 금리도 37% 정도입니다. 사채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금리인데도 어떤 부유층이 이를 부담하면서 더군다나 자신의 애장품을 남의 손에 맡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명품 전당포를 찾아오는지에 대한 단서는 이들이 찾아오는 시기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매장 직원들은 하나 같이 "보통 1일, 15일 30일 등 카드 결제일이 될 때마다 주로 2-30대의 젊은 고객들이 명품을 들고 몰려든다"고 했습니다. 제품의 값어치에 대해 감정하다보면 가끔 고객들의 사연에 대해 듣게 되는데 적지 않은 이들이 카드 돌려막기를 한 끝에 더 이상 돈을 빌릴 데가 없다보니 가장 아끼는 애장품을 담보로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4-5백만원 짜리 명품백은 중고가가 보통 2~3백만 원에 팔리고 이를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은 중고가의 50~60%인 1백만 원 전후에 불과합니다. 500만원 짜리를 '질렀던' 이들이 나중에 백만 원을 법정 최고이자로 빌리려는 겁니다.온라인 거래를 주로 하는 또다른 전당포를 찾아 출장 서비스를 촬영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당시 동행한 한 20대 여직원은 "제 주변에도 돈 없는데 빚을 내서라도 명품 지르는 애들이 많아요. 그런 애들이 나중에 버티다 버티다 안 되면 명품을 담보로 돈을 빌리죠"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남자 직원은 "고객들중 대학생이 많은데 여학생들끼리 명품계를 만든 경우도 자주 봤어요. 곗돈을 타서 일단 명품백을 사고 그 뒤로도 매달 납입금을 내야 하지만 그 돈이 없어, 명품백을 맡기고 돈을 빌려가는 여대생도 봤어요. 명품백 갖고 싶어 계를 들었다 명품백 쓰지도 못하고 곗돈 막느라 허덕대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명품 전당포에 몰리는 2-30대. 한 마디로 '명품 지르는 88만원 세대'의 단면으로 보입니다.

나라 전체가 휩쓸려가는 명품 열풍 속에 뒤쳐지기 싫어하는 평범한 중산층, 평범한 서민들중 한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줄어드는 일자리와 빚 없이는 감당하기 힘들만큼 치솟는 등록금, 그리고 명품 열풍이 빚어낸 이 시대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취재 내내 씁쓸했습니다.하대석 기자 hadae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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