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학교' 국제중 그 추악한 파국
부모 마음은 다 똑같았다. 서울 시내에 사는 이정훈씨(가명)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곧잘 하는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몇 년 전 이씨의 아이가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국제중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160명 정원인 영훈국제중(영훈중)의 일반 전형에 지원했다.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학교생활기록부 서류심사와 개별 면접을 봐 3배수를 뽑는 1·2차 단계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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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영훈국제중. |
"학교 재정 어렵다며 2000만원 불러"
문제는 다음 단계인 추첨이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씨의 자녀는 떨어졌다. 입학 대기자에서 '대기자' 꼬리표가 떼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중, 학교 관계자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사정이 어려운데 학교 발전을 위해 좀 용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씨가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학교 관계자는 재정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했다. 순간 감이 왔다. 얼마 정도냐고 하니 2000만원을 불렀다. 이씨는 황당했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기로 결정했다. 중학교 3년 내내 들일 사교육비로 여기자고 마음먹었다. 학교 근처 은행에서 전액 1만원권으로 뽑아 종이에 싼 후 종이가방에 넣었다. 돈을 받은 학교 관계자는 윗분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후 학교에 갔을 때, 이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학부모를 3명 정도 만났다.
상세하게 당시 기억을 털어놓은 이씨는 다만 자신이 드러날 수 있는 연도나 이름·나이 등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검찰·경찰 수사에서는 솔직하게 다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만, 보도를 통해 자신이 널리 알려지는 건 자녀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적잖은 부담을 안고도 양심선언을 한 이유는 끝없이 번지는 영훈중 사태 때문이었다. 당시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이씨는 이번 기회에 "입학 장사를 하는 학교가 바로잡혀야 한다"라는 심정으로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씨가 주장하는 편법 입학 장사에 대한 의혹은 영훈중학교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전형에서도 조짐이 보인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이 발표한 '영훈중 관련 감사원 위탁 민원조사결과보고'를 보면 영훈중은 2009~ 2010년 사배자 전형의 결원 4명 중 3명을 일반 전형에서 충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 전입·편입 시 사배자 몫이 빌 경우 반드시 사배자로 충원하도록 정해놓았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인기가 많은 국제중학교에 제때 못 들어가면 이렇게 자리가 빌 때 뒷구멍으로 슬그머니 부유층 자제들이 들어가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실제로 한 금융권 관계자의 자녀가 1억원을 주고 한 국제중에 들어갔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 중이다"라고 말했다.
국제중 입학을 둘러싼 꼼수와 부정
사배자 전형이 2011년부터 경제적 배려 대상자와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반반씩 나뉜 것도 맹점으로 지적된다. 애초 국제중학교가 만들어지면서 귀족학교 논란이 일자, 사배자 규정을 따로 만들었다. 부유층만을 위한 학교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국제중학교가 생긴 2009년에는 사배자에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새터민 자녀·다문화 가족·환경미화원 자녀 등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영훈중학교는 사배자에 대한 '배려'를 끊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하는 장학금만 주고 학교가 줘야 하는 사배자 장학금 혜택은 없앤 것이다( < 시사IN > 제146호 '사립대학 등록금 뛰어넘는 귀족학교 국제중' 기사 참조). 사배자에 대한 장학금 혜택이 줄어들자 지원자가 줄었고 학교는 이런 이유를 들어 2011년부터는 사배자 전형을 둘로 나누었다.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었던 사배자 중 다문화 가정·환경미화원 자녀 등 일부를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넣었다. 그러면서 장애인·비저소득층 한부모·다자녀 가정도 새롭게 포함시켰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몫은 취약 계층이나 소수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녀와 같은 특권층의 자녀가 사배자로 국제중에 입학하는 건 꼼수다. 이 부회장이 재혼을 하면 그 아이는 다시 학교를 나가야 하나? 다자녀 가정이 포함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요즘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오히려 부의 상징이 되고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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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유학·전학 등으로 영훈국제중을 나간 47명 중 7명(14%)이 사회적 배려자 출신이다(위). 사회적 배려자는 매년 정원의 20%를 뽑는다. |
이 부회장뿐만이 아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영훈중에 입학한 비경제적 분야 사배자 48명을 분석해보면 장애인의 자녀로 들어온 경우는 2명에 불과하다. 새터민·환경미화원의 자녀는 한 명도 없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합격자는 셋 이상 다자녀 가정 자녀였다. 전체의 60%(29명)가 넘었다. 사립초등학교 출신도 62.5%(30명)였다. 이 중에서도 영훈중과 같은 재단인 영훈초등학교 졸업생이 14명이나 됐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사배자 전형이 처음에는 귀족학교 만들기의 물타기용이었다가, 이제는 부유층 자녀가 '명분을 만들어' 안전하게 입학하는 통로로 변질된 셈이다"라고 말했다.
교육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영훈중 스캔들'이 영훈중만의 얘기가 아닐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수목적고·자율형사립고는 영훈중과 마찬가지로 입학 정원의 20%를 사배자로 뽑고 있다. 이런 사배자 전형이 악용됐거나 될 가능성은 다른 학교에도 있으리라는 지적이다.
민주통합당 윤명화 서울시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도 서울 시내 25개 자사고 입학생 중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합격한 학생이 830명이다. 이 중 다자녀 가정 자녀로 들어간 학생이 549명(66%)으로 절반을 넘는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아들도 지난해 사배자 전형 중 다자녀 가구 자격으로 자사고에 합격했다. 전 전 의원의 아들이 합격한 학교는 전 전 의원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에 있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사배자 문제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밝혔다. "들어갈 때도 공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섞이지 못하는 사배자의 위화감, 그걸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학생의 빈자리로 입학 장사하는 학교까지. 시작부터 중간 그리고 끝까지 공정하지 않은 국제중에서 교육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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