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국제제자훈련원 출판부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아버지가 쓰시던 노트북 아웃룩에서 아버지가 오정현 목사님에게 2008년 보낸 이 메일을 읽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의 비서였던 박정은 씨를 통해 오정현 목사님의 부임 이후 아버지에게 오정현 목사님이 어떤 존재였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던 나에게도 그 메일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가 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셨던가?'

아버지의 메일이 공개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이 메일을 읽은 사람들이 받은 충격을 이곳저곳에서 듣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글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그 누구 앞에서도 오 목사님을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오 목사님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오 목사님을 변명하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011년 초 당시 어머니도 모르고 계셨던 메일 내용을 알고 있던 사람은 편지를 받은 오정현 목사님, 편지를 전달한 비서 박정은, 그리고 옥성호, 이 세 사람뿐이었을 것입니다. 박정은 비서에게 밀봉된 편지를 전달받은 2008년 당시의 오 목사님 비서실장이 그 편지를 뜯어서 읽었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 "이제는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들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론이 한참 떠들었던 그 '성공적 사역 계승'이 얼마나 허구이고 실패인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을 말합니다. " 사진은 옥성호 본부장. ⓒ뉴스앤조이 이용필

나는 처음 그 편지를 읽었을 때 이 편지를 영원히 어둠 속에 묻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의교회의 평화를 위해서, 한국교회의 평화를 위해서, 또 무엇보다 아버지의 이름의 평화를 위해서. 하지만 저는 생각을 바꿔 그 편지를 표절 대책위원회 구성이 논의된 당회가 열리기 전 당회원들께 보냈습니다.

그 표면적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당회 안에서 오 목사님을 지지하는 분들 중에 다름 아니라 옥 목사님이 오 목사님을 100%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비록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오 목사님의 모든 사역을 지지하는 것이 옥 목사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행여 생각하는 분들에게 제대로 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그 메일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적절한 시기에 그 메일을 당회원뿐 아니라 세상에 공개하려고 그때 이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입니다. 1월 중순경인가요? 제가 아버지 수첩과 관련해 오 목사님과 당회에 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굳이 당회 장로님들까지 수신인에 넣은 이유는 오 목사님께만 얘기해서는 통하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그때 더 이상 오 목사님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진심을 숨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표절이니 대필이니 관심도 없었습니다. 윌킨스에게 받은 메일을 권영준 장로님께 전달한 후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알아서 내부적으로 잘 해결된 줄만 알았습니다.

다시 노파심에서 얘기하는데요…. 저는 이 표절 사건의 '배후'가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의 배후는 오 목사님의 '말 바꾸기'입니다. 그것이 진짜 배후입니다. 그리고 굳이 배후를 하나 더 꼽자면 오 목사님이 시작하신 '정감 운동'입니다.

그 수첩 관련 메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용이 좀 감정적이지 않습니까? 30분 만에 쓴 글입니다. 그만큼 그 글을 쓸 때 뚜껑이 열렸었다는 말입니다. 헌금이 급한 거 이해합니다. 돈 모자란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의 진심을 가장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또 그렇게 악용하는 행태에 너무 분노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때가 되면 알릴 것을 제대로 알려야겠다.'

좀 전에 얘기했듯 2년 전 아버지 편지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그 아픈 몸으로 손수 한 글자, 한 글자 절제하고 다듬으면서 이 짧은 메일 하나를 쓰는 데 마치 설교 한 편을 쓰듯이 쏟아 부었을 아버지의 정성과 에너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힘들어 하셨구나…. 그래서 더 아프셨구나….' 그래도 아버지는 자신의 뜻을 죽이고 숨겨 자신의 후임이 비상하는 것을 더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일 것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그러나 1월 6일 유인물에 실린 수첩 인용문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틀렸음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렇게 이리저리 산 자의 입맛대로 이용되고 왜곡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정말 제대로 착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는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들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론이 한참 떠들었던 그 '성공적 사역 계승'이 얼마나 허구이고 실패인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 아마도 목사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봐, 이러니까 내가 세습을 하는 거야. 세습을 하면 애초에 이런 문제가 안 생겨요. 옥 목사님, 하나만 알고 둘을 몰랐어. 나처럼 세습을 해야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거지. 사람들은 내가 뭐 이기적인 이유로 세습을 하는 줄 아는데 이번에 옥 집사를 통해서 사람들이 좀 많이 깨달았으면 좋겠네. 내가 세습하는 이유가 다 교회를 사랑해서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세습을 안하면 교회가 시끄러워진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런 목사들한테는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할 약이 없습니다. 맘대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손자까지 세습하세요.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볼 때 '성공적 사역 계승'이라는 언론의 칭찬은 한동안 아버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는 그 허상에서 깨어나 늦게나마 교회를 바로 잡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악화된 건강으로 다시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게 다였습니다.

나는 한국교회가 아버지의 후임 선정 과정을 통해서 제왕적 담임목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교훈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지만 아버지는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 오정현 목사님을 데려왔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아버지 역시 대형 교회의 제왕적 담임목사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진정한 의미의 영적 권위를 가진 존경받는 목회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버지가 저토록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오 목사님을 데리고 오려고 할 때는 분명 그 속에 범인이 보지 못하는 깊은 경지의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대형 교회의 목회자가 존경받으면 받을수록 그가 저지를 실수는 더 치명적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말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런 부분들을 다 포함해 아버지의 마지막 생애가 정확히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우연히 아버지가 30분이 넘게 오정현 목사님과 통화하는 현장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가 서초고등학교를 사겠다고 난리를 칠 때였습니다. 그 긴 통화 시간 내내 온몸의 진액을 짜 가면서 오 목사님께 왜 그 건축이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애원하고, 화를 내고, 달래던 아버지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는 사랑의교회가 진행하는 지금의 ‘이런’ 건축을 찬성하지 않으셨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가 제대로 되어야 이어서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아버지 망신시킨다고 말합니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하나 깨달아 가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제대로 잇는 것은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옥한흠의 정신을 다시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말년에 자신의 실수를 놓고 고통스러워하던 그 지점, 그가 말년에 가졌던 깊은 고뇌의 바로 그 지점을 찾아내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은퇴 후 가졌던 인터뷰, 설교 등을 들었다면 그가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던 그 지점이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대형화가 빚어내는 세속화입니다."

바로 두 단어입니다. '대형화' 그리고 '세속화'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회를 차마 '실패'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엇박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를 위해서, 옥한흠 목사님을 위해서 '침묵'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께 나는 이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 길인지 제가 지금 말한 이 점을 중심으로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교회의 '대형화'와 '세속화'를 막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 방향들을 찾아 행동으로 동참하는 것이 사랑의교회를 사랑하고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 훈련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것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뜻을 '잇는' 길입니다.

한국의 개신교, 이제는 부흥이 아니라 생존을 걱정할 때입니다. 너무도 많은 목회자들이 현상 유지, 다시 말하면 '기득권 유지'를 교회 사랑으로 착각한 채 '침묵의 카르텔'에 빠져 있기에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도 힘든 상황입니다. 나 같은 사람의 눈에도 보이는 이 상황이 안 보이십니까? 우리 교회 헌금은 줄지 않으니 걱정할 거 없다고요? 정말로, 정말로 뻔한 말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민도가 올라가는 것, 즉 성도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잠깐만 시간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작년 6월인가요? 만약 김진규 교수님이 페이스북에 오정현 목사님의 논문과 관련한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알려 준 그 링크를 내가 리트윗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당회에 논문과 관련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당회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당회가 진상위원회 위원장으로 권영준 장로님을 임명하지 않았더라면, 김진규 교수가 9월 2일 표절 증거를 첨부한 이메일을 오 목사님께만 보내고 권 장로님께는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1월 6일 헌금 독촉 유인물에 아버지의 수첩 내용이 없었더라면(또는 작년 4월 오 목사님이 아버지의 수첩을 내게 돌려주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힘들여 쓴 2008년 6월의 그 메일, 낡은 아버지의 노트북 아웃룩 메일함 속에서 잠자던 그 메일은 어쩌면 영원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옥성호 / 국제제자훈련원 출판본부장
* 옥성호 본부장이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