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협의 직전 “문제 많아”
학부모·교육계 엇갈린 반응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밀어붙이던 정부가 갑작스럽게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교육부는 당초 12일 당정협의를 마친 후 최종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이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육의 ‘수능 연계’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정부 정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후 7시20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은 대입에 연계하되, 방식은 지금까지 제시된 대안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 21일 발표 예정인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에 포함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제시된 대입 연계 방안은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화 △한국사 표준화시험 시행 및 대학입학자격 연계 △한국사능력검정시험(국편) 결과 활용 △한국사 표준화시험(평가원) 마련 및 학교 내 시행 등 4가지다.
서 장관은 “당에서 대입 연계 방안이 학부모,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이 같은 태도는 종전의 입장과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지난 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역사교육 강화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 때까지만 해도 교육부는 한국사 수능 필수화에 찬성하는 학자들 일색으로 토론회를 개최해 “미리 결론을 내고 짜맞추기 토론을 열었다”는 비판까지 나왔던 터였다.
교육부는 12일 오전까지도 한국사의 대입 연계 방안을 확정하는 브리핑을 예고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변했다.
교육부의 수능 필수화 추진방침을 묵인해오던 여당 국회의원들이 갑작스럽게 이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수능 필수화가 생각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 결론이 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어떤 배경에서 이뤄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여당이 대통령 뜻을 어기고 교육부의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부는 지난달 10일 대통령이 한국사의 수능필수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을 때만 해도 신중한 입장이었다.
당시 교육부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으니 후속 논의를 해야겠지만 대입 기준 반영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도 사교육 확대 우려와 수험생의 학습부담 증가, 선택형 수능체제 전체의 개편 등이 얽혀 있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넓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여야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수능 필수화의 기치를 들었다. ‘한국사 수능 필수화에 찬성하지 않으면 매국노’라는 식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교육부도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였다. 지난 8일 토론회 이후 교육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수능 필수화 관련 법안을 발의하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결과적으로 교육부는 대통령과 정치권의 압력에 대학입시 주무부처로서 소신을 접고 수능 필수화를 밀어붙이다 거꾸로 ‘혼선’의 주역으로 내몰린 셈이다
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육부가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교육적인 방안을 검토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논의의 틀 자체가 수능 필수화냐 아니냐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사 과목의 수능 필수화 결정이 미뤄지면서 그동안 이를 반대해 온 학부모와 교사, 교육계 인사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 사회 많이 본 기사
박이선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학생들을 마치 시험 보는 기계처럼 여기는 것이 우리 교육의 오랜 문제다. 수능 과목에 포함시키는 것만으로 역사의식이 길러질 거라 기대하는 건 단순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안양옥 교총 회장은 “사교육 팽창이나 암기과목 전락 등 반대쪽의 우려는 교육계가 지혜를 모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한국사 수능 필수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교육계의 과제로 정부가 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