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 | 나무를 심은 사람들

나무가 전하는 '정치의 길'

2020-01-31 11:02:01 게재
고규홍 지음 / 휴머니스트 / 2만3000원

국회 곳곳엔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 등의 '기념식수'들이 나날이 그 높이와 두께를 더해가고 있다. 역사의 순간들을 품고 있는 이 나무들은 마치 수수께끼라도 낼 것처럼 지나가는 이들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다. 정치의 도를 훈수 두듯 둥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회의사당을 움직임 없이 같은 모습으로 응시하기도 한다.

고규홍씨의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나무를 심을 수밖에 없는 사연들로 빽빽이 메워져 있다. 20여년간 전국를 누비며 나무를 만나고 그 곁에서 이야기를 찾아낸 저자는 사료와 문중 문서, 전설, 민담까지 모아냈다. 신라시대 육두품으로 진성여왕에게 개혁안을 내놨지만 수용되지 않자 결국 은둔의 시간을 보낸 최치원은 합천 학사대에 지팡이를 꽂았다. 지팡이에 싹이 올라 울창한 전나무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중기 문신인 송순은 면앙정 주변에 우리 산과 들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굴참나무를 찾아 심었다. 저자는 "송순의 자연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 물 흐르듯이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서원인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은 소나무 1000그루로 숲을 조성했다. "이 땅의 학자들을 올곧게 키우려는 마음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숱한 학자들의 마음을 다스려온 숲의 나무라는 생각에서 사람들은 머뭇거림 없이 이 숲의 나무를 학자수"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황의 철학동무였던 느티나무, 신사임당의 화폭에 살아숨쉬는 매화의 사연들도 꼼꼼하게 챙겨 실었다. 추위를 이겨내며 나라를 지킨 탱자나무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을 그대로 담았다. 우리민족의 대표 소나무를 심은 고종의 마음도 빼놓지 않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함으로 얻게 된 광복을 아쉬워했던 김 구는 귀국하자마자 처음으로 수형 생활을 했던 인천 감옥을 찾았고 다음 행선지로는 3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던 마곡사를 선택했다. 그는 "조국의 완전한 광복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무궁화와 향나무를 심었다.

식민지 치하의 시인 심훈은 상록수인 향나무를 심었다. 소설 '상록수'와 시 '그날이 오면'에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민족 고유의 정신과 문화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상징"이 묻어났다. 금메달을 목에 건 청년 손기정은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오자 부상으로 받은 작은 화분의 나뭇잎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살며시 가렸다. 40일이 넘는 귀국일정에도 그는 화분에 담긴 어린 나무를 정성껏 보살피고는 모교인 서울 만리동 양정고등학교에 옮겨 심었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삶은 나무와 더불어 이어졌으며 나무를 통해 기억될 것이고 나무를 심은 사람은 곧 그때의 모든 역사를 나무 안에 오래 기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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