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7 rings'
2019년 빌보드 싱글 차트는 릴 나스 엑스가 독차지했지만 올해의 '작은 첫발'을 찍은 주인공은 다섯 번째 음반 < thank u, next >에서 'thank u, next'와 '7 rings' 두 곡을 정상에 올린 아리아나 그란데였다. 그중 '7 rings'는 영화로 익숙한 뮤지컬 < 사운드 오브 뮤직 >의 'My favorite things' 멜로디를 빌려와 친근감을 더했다. < thank u, next >의 주제인 아리아나 그란데의 자존감은 성공과 우정을 과시하는 '7 rings'의 자신감에서 더욱 넘쳤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가는 음악시장의 흐름에서 가장 대중적인 위치를 점한 그는 작년부터 이어진 여성 음악가들의 약진을 2019년으로 이었다. 낯익은 선율, 어렵지 않은 랩과 보컬은 '평범'이라는 이 곡의 의외의 성공 동력. 팝 가수의 최선이 군더더기 없는 노래임을 증명하며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레코드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는 성과를 남겼다. 팝 애호가라면 모두가 상반기에 이 노래를 언급했다. (임동엽)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bad guy'
Z세대의 에이브릴 라빈은 스케이터 보이를 놓친 발레 소녀를 탓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스케이터 보이들 위에 군림할 뿐. 상남자 타령이나 하는 마초남들에게 10대 소녀가 날리는 일침이 가관이다. "아~ 네가 그렇게 나쁜 남자야? 난 너네 엄마가 싫어할 정도로 나쁜 여자(bad guy)인데"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에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던지는 조롱 섞인 "Duh!"까지, 이거 완전 펑크(Punk)를 품은 팝송이다.
자신의 몸이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며 위아래로 빅 사이즈 옷을 맞춰 입고 Z세대를 대표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몸소 전하는 빌리 아일리시. 짧지만 굵은 그의 행보를 비춰보았을 때 'bad guy'가 갖는 의의는 명확하다. 'bad guy'는 센 척이나 하는 속 빈 강정들을 향한 충고이자, 누릴 것 다 누린 부머(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날리는 "요즘 것들"의 통렬한 한 방이다. 이것이 얼터너티브고, 이것이 록이다. (정연경)
릴 나스 엑스(Lil Nas X) 'Old town road (Feat. Billy Ray Cyrus)'
현 시대의 히트곡이란 무엇인지를 규정짓는 트랙이다. 'One sweet day'와 'Despacito'를 훌쩍 넘어선 19주 연속 1위라는 빌보드 신기록. 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틱톡(TikTok)과 밈(Meme)이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인싸 플랫폼'을 통한 유행의 무한확산이야말로 이 현상의 핵심이자 공식이기 때문이다. 카우보이 문화를 선망하는 'Yeehaw agenda'의 맥락을 잇는 전략적인 곡 제작과 스스로 일으킨 'Yeehaw Challenge' 붐.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Z세대에게 있어 음악은 단순한 놀이소재로도 쓰일 수 있음을 한발 앞서 눈치챈 셈이다.
유행이 띄운 노래라고 미리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인 인치 네일즈(Nin Inch Nails)의 '34 Ghost Ⅳ'를 샘플링해 만든 컨트리 스타일의 리프부터 그의 재기가 느껴지니 말이다. 쫀쫀한 트랩 비트를 타고 넘는 주인공의 래핑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기도 한 컨트리 가수 빌리 레이 사이러스의 보컬이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카우보이의 부합하며 발하는 시너지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 후렴의 합창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영리하게 섞은 덕분일 터. 시대의 트렌드를 시대의 방법으로 전파해 다시 한번 새시대를 정의하는, 현 세대에게 있어 음악의 가치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지침과 같은 싱글. (황선업)
영 떡(Young Thug) 'The London (Feat. J.Cole & Travis Scott)'
래퍼 21 새비지(21 Savage)는 '퓨처(Future)와 영 떡은 요즘 힙합 노래들의 저작권료 90% 정도는 받아야 한다'라는 트윗으로 두 아티스트의 위상을 요약했다. 독특한 발성의 멈블(Mumble), 보컬과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짜는 영 떡의 스타일은 2010년대 말 힙합 씬의 가장 선명한 흐름을 주도했다. 프로듀서 메트로 부민(Metro Boomin)과의 찰떡궁합, < Jeffry > 등의 멋진 믹스테이프,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 피쳐링으로 주류 시장에 존재감을 키워온 그는 첫 메이저 데뷔작 < So Much Fun >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곡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 'The London'이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한 제이 콜과 작년 < ASTROWORLD >라는 걸작으로 슈퍼스타가 된 트래비스 스캇이 한 데 뭉쳐 최고의 3분 25초를 선사한다. 트래비스 스캇의 몽롱한 훅이 티 마이너스(T-Minus)의 차분한 트랩 비트와 함께 럭셔리 호텔 '더 런던'의 문을 열고, 제이 콜이 날카로운 랩으로 모두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 다음 영 떡의 주술 같은 목소리가 자욱한 연기처럼 파고든다. 컨디션 절정의 세 래퍼가 정의한 이 시대의 힙합 문법. (김도헌)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Sucker'
2013년 해체 이후 세 형제가 다시 만나 올해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추억 속 소년의 앳된 보컬과 외모 대신 그들은 성숙해진 목소리와 매끈한 팝으로 돌아왔다. 200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보이 밴드의 신곡 발표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발매 즉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석권하면서 이들을 몰랐던 이들에게도 산뜻한 첫인상을 제공했다. 전성기 시절에도 얻지 못한 싱글 넘버원이기에 더 화제가 되었다.
조 조나스가 몸담고 있던 밴드 DNCE의 경쾌함, 유명 팝 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한 라이언 테더의 프로듀싱이 만나 대중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조나스 형제들의 재결합은 반가웠고, 거부할 수 없는 팝 선율은 많은 이가 노래를 찾고 듣게 만들었다. 2019년의 '흥'을 책임진 노래. (정효범)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 'Lose you to love me'
'두 달 만에 넌 다른 사람을 만났지 /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셀레나 고메즈는 지나간 사랑인 저스틴 비버를 향해 다시 한번 저격을 가한다. 마침표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 사랑을 시작한 전 애인의 행보는 셀레나 개인의 감정적 절망을 넘어 그 이상의 음악적 성숙을 가져왔다. 대중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이어나갔던 사랑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눈길 아래서 끝난 이별의 과정은 이 노래의 뿌리 깊은 영감이 됐고, 그는 이를 솔직한 발화로 완성시켰다.
현악기와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세련된 편곡, 담담하면서도 공감을 자아내는 가사, 터뜨릴 듯 터뜨리지 않는 절제된 보컬까지. 음악 예술성의 완벽한 제압으로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자는 다짐 또한 놓치지 않는다. 뼈아픈 만남의 끝은 그렇게 '나를 사랑하기 위해 너를 잃어야 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상처의 노래는 아름다운 종착을 내린다. 시린 마음은 성장을 남겼고, 우리는 고품격 이별가를 얻었다. (조지현)
나오미 스콧(Naomi Scott) 'Speechless'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한 영화 < 알라딘 >에는 공주 자스민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다. 왕위를 계승하고 나라를 이끌기 원하는 그의 진취적인 야망은 원작보다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디즈니의 변화를 보여준다. 'Speechless'는 이러한 시대성에 맞춰 원작의 작곡가 앨런 멘켄(Alan Menken)과 위대한 쇼맨, 라라랜드로 유명한 작곡 듀오 파섹 앤 폴(Pasek and Paul)이 새롭게 주조한 곡이다. 기존에 없던 이 자스민만의 테마곡에는 침묵을 강요받던 계층을 대표한 저항의 선언이 한껏 담겨있다.
새로운 자스민에 대중은 열광했다. 그를 무릎 꿇게 하려는 현실에 맞서 '나는 침묵하지 않을 거야'를 강변하는 노랫말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스피치리스'로 억압받는 약자들에게 강한 연대감을 심으며 노래를 각종 음원 차트에 올렸다. 영화의 흥행만큼이나 투철했던 주제가의 시선. 그 시선이 작금의 사회를, 대중을 읽었다. 개인의 다짐이 다수 목소리의 대변으로 이어진 올해의 싱글. (이홍현)
앤 마리(Anne Marie) '2002'
11살이던 2002년에 남자친구를 만난 앤 마리는 엔싱크의 'Bye bye bye', 제이 지의 '99 problems',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와 'Oops... I did it again', 넬리의 'Ride wit me'를 함께 따라 부르며 사랑을 키웠다. 16년이 지나 가수가 된 앤 마리는 에드 시런, 줄리아 마이클스, 베니 블랑코와 함께 '2002'를 작곡해 자신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고 이 아름다운 사랑을 대중에게도 공개해 함께 나누었다.
2018년에 데뷔앨범 < Speak Your Mind >를 발표했을 때 '2002'는 '무명'이었지만 작곡가 에드 시런과 함께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영상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면서 뒤늦게 대한민국에 스며들었다. 장난기 넘치고 따뜻한 장조 곡 '2002'를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하기는 벅차다. 포크의 바탕 위에 일렉트로닉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그 위에 힙합과 컨트리로 채색해 연령대와 상관없이 우리의 젊은 시절,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앤 마리가 2002년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2002년도 아름다웠다. (소승근)
리조(Lizzo) 'Truth hurts'
2019년이 리조의 해라는 것에 굳이 DNA 테스트까지 필요할까. 리조는 정형화되고 정제된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팔짱 끼고 있는 대중들 앞에 거대한 체구를 앞세우며 당당하게 자신을 뽐냈다. 젠더, 인종, 성 정체성과 관련된 고정관념들을 짓밟으며 전진하는 리조의 무지갯 빛 기세를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그토록 보수적인 그래미 또한 그의 이름을 최다 부문에 올리며 항복을 선언했을 정도.
데뷔 이래 두 장의 앨범과 'Good as hell', 'Boys' 등 좋은 곡들을 선보이며 내공을 쌓아가던 리조는 한 SNS 내 밈에 사용된 'Truth hurts'으로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섰다. 곡은 그가 지향하는 삶을 유쾌하게 녹여낸 가사와 자기 자신과 결혼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자신을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메시지지만 리조의 캐릭터와 언행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음악이 설득력을 더했다. 멋과 흥, 메시지를 모두 챙긴 올해의 싱글! (이택용)
루이스 카팔디(Lewis Capaldi) 'Someone you loved'
강렬한 첫 도입부 몇 초로 곡의 성공이 결정된다면, 'Someone you loved'는 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싱글이다. 스코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루이스 카팔디는 별다른 장치 없이 잔잔하게 차오르는 피아노와 목소리 하나로 영국 싱글 차트 7주 연속 1위를 하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제임스 블런트, 제임스 아서와 작업한 영국의 유명 작곡 팀 TMS가 참여해 영국 팝의 온기가 가득하다.
1996년생인 루이스 카팔디는 오랜 슬픔을 견뎌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표출한다. 그는 나를 구해줄 사람, 내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아픔을 고통스럽게 노래한다. 6개월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만든 곡이라는 점, 빠르게 성과를 맛보기를 바라는 이 시대에 2018년 11월 첫 발매 이후 1년이 지나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느림의 미학이 담긴, 올해 가장 감성적인 팝. (정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