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전쟁' 1라운드 판정패

2010. 1. 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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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CES' 가전쇼 폐막…삼성·엘지 성적표는

'스마트폰' 하드웨어 최고인데 SW·콘텐츠 취약

'3DTV' 상용화 늦추다가 일본에 주도권 뺏겨

"우리는 백화점 건물(단말기)을 짓는데, 애플은 거기에 10만개 점포(애플리케이션)를 들여 돈을 벌고 있다. 이젠 디바이스(기기)만으로는 승부가 안 된다."(남용 엘지(LG)전자 부회장)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아이폰 열풍은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테스트한 측면이 있다. 국내 시장 1위인 우리를 반성하게 했다."(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나흘 동안(7~10일) 열린 세계 최대 가전쇼(CES)에서 국내 전자산업을 이끄는 삼성·엘지의 최고경영자들이 속내를 드러냈다. 글로벌 경쟁사들 앞에서 미래 전략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건 이례적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두 회사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대형 전시장에서 주요 전략제품을 대거 선보이며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엘지가 "가전쇼를 빛낸 건 사실이지만, 트렌드를 주도했다고 보긴 힘들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은 뭘까?

우선, 휴대전화 시장 구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대응력이다. 삼성이 아이폰의 대항마로 내놓은 '옴니아2'는 하드웨어 측면에선 업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 미국 피시월드가 선정한 10개 스마트폰 순위에서 "인상적인 디자인에 느린 작동"이란 평가와 함께 9위에 그쳤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다. 아이폰 열풍은 풍부한 콘텐츠와 편리한 사용자환경(UI)이 주된 배경이다. 그러나 옴니아2가 채택한 운영체제(윈도모바일)와 사용자환경(터치위즈)은 덩치가 커 반응속도를 크게 떨어뜨린다. 콘텐츠 장터(앱스토어) 역시 업그레이드 지원이 늦어 이용할 수 없거나 일부 이동통신사 고객에 한정돼 있다.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성능과 디자인에서 편리하고 다양한 제품 환경으로 빠르게 옮아가는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경쟁 상대는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꼽히는 애플과 구글이다. 한 단말기 업체 관계자는 "제품과 서비스 개선은 느리면서 유통시장에서 독과점 파워에 기대 마케팅으로 승부를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엘지는 스마트폰 대응 자체가 한참 늦었다. 피시·인터넷 업체들까지 앞다퉈 안방을 공략하는데, 이에 대항할 변변한 제품조차 내놓지 못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인텔 칩을 달아 내놓은 스마트폰은 사실상 모바일인터넷기기(MID)에 가깝다.

'입체영상(3D) 텔레비전' 역시 시장 판단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지난해부터 일본의 소니·파나소닉 등이 상용화를 서두를 때, 삼성·엘지는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일본 업체들이 한국에 빼앗긴 티브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브랜드 마케팅용 전략으로 폄하한 채, 자신들이 주도권을 쥔 발광다이오드(LED) 텔레비전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더 주력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두 업체는 "입체영상 시장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열릴 것"이라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 삼성전자는 발광다이오드 제품에 입체영상을 탑재한 공격적인 라인업을 선보였다. 두 업체는 "입체영상은 시장 성장 속도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선도적인 기술과 제품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엘지가 시장 판단과 예측에서 한방 먹은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들의 고민은 깊다. 제조와 마케팅 중심의 사업구조와 경영방식으로는, 미래 시장과 트렌드를 선도하기 어렵다는 안팎의 지적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삼성은 지난해 창립 40돌을 맞아 솔루션·콘텐츠 중심의 '21세기형 사업구조'로의 변신을 선언했고, 엘지는 몇해 전부터 '고객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을 경영 목표로 내걸었다. 남용 부회장은 "제품에 고객 가치를 심는 '스마트 전쟁'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며 "이런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혁신제품을 내놔야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은 "그렇다고 삼성과 엘지가 최대 경쟁력인 제조를 버리고 구글이나 애플처럼 가는 건 아닌 것 같다"며 "탄탄한 제조 기반으로 창의와 혁신이 시너지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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