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교수 “고진감래 시대는 갔다, 원하는 길을 가라”

글·사진 손제민 기자

‘서울대생 대학생활 만족도’ 조사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이제는 믿지 말자.”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43)가 학생들에게 하는 얘기다. “기성세대에게는 기만적이고, 젊은 세대에게는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직종을 위한 경쟁에 들러리가 되기보다 길 밖의 길을 가라”고 조언했다.

서울대 입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직종을 위한 경쟁에 들러리가 되기보다 길 밖의 길을 가라”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2007년 입학생 120여명을 상대로 설문·면담한 결과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덜 행복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에서는 2학년에 전공을 선택하는데, 학점이 좋아 1지망으로 이른바 ‘인기학과’에 간 학생일수록 대학생활·강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놀라운 대목은 학점이 좋아서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들어간 학생일수록 주당 공부시간이 더 적었다는 점이다.

장 교수는 이를 “학생들이 대학을 취업용 학점 관리를 하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직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학점을 ‘관리’한 학생들은 조금 공부하고도 좋은 학점으로 인기학과에 들어갔고, 특정주제에 흥미를 느껴 ‘몰입’한 학생들은 더 많이 공부하고도 자신이 원하는 과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만족감은 몰입한 학생들이 더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투자한 시간 대비 학점을 잘 주는 과목만 들은 학생들이 2학년 때 인기학과에 진입하고, 무슨무슨 고시에 ‘최연소 합격’ 타이틀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은 반면 어느 한 과목이나 동아리 활동이 재미있어서 몰입한 학생은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실패한 학생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장 교수는 이러한 얘기를 최근 출간된 공동저작 <위기의 청년세대>(나남)에서 풀어놓았다.

장덕진 교수 “고진감래 시대는 갔다,  원하는 길을 가라”

장 교수는 “지금의 젊은 세대만큼 구조적 배제와 차별을 통째로 겪는 불행한 세대는 없다”고 말한다. 386세대가 정치적 억압을 겪긴 했지만 대부분 정부·기업 등에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한 반면 지금 젊은 세대는 이대로 가다가는 극히 일부만 주류에 진입하고 대부분 철저히 배제된 삶을 유지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에서다. 장 교수의 관찰은 서울대생들조차 그 불안감에서 예외가 아님을 뜻한다.

장 교수는 이제 거짓말 그만하자고 한다. “이제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고생하기만 해서 행복해지는 때가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람들에게 계속 고진감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10년 후 뭐를 먹고 살 것이냐고 끊임없이 물으며 대기업을 밀어주고, 낙숫물 효과에 의해 일자리도 창출되고 살림살이도 나아질 것이라고요.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고생해야 행복해지는 걸까요?”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는 ‘러닝머신’ 위에서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려면 두 배로 빨리 뛰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뛸 수 없는 데다, 장 교수의 얘기처럼 두 배로 빨리 뛸 수 있는 사람조차 행복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 오히려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멈춰서서 먼 풍경을 바라보든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편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장 교수는 전국 상위 1% 학생들 중에도 성적이 최상인 사람들이 오히려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을 ‘정체성 폐쇄’로 설명한다. 주변의 기대 때문에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일찌감치 닫아버리는 사람들이 한국인의 70%가 넘고, 그러한 폐쇄는 ‘성공’할수록 더 커진다는 것이다.

“면담 때 한 학생이 눈물을 흘렸어요. 그 학생은 서울대 입학이 날개를 달아줄 줄 알았더니 도리어 족쇄였다고 해요. 대학만 가면 꿈을 펼칠 줄 알았대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오니 2학년 때 무슨 학과에 들어가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고시에 합격하겠지 하는 주변의 기대를 받았대요. 성취하면 할수록 족쇄가 더 커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는 거지요.”

장 교수는 “진정한 행복이란, 기존에 정해진 성공의 길은 시간이 지나면 빠른 속도로 무력화될 길이라고 믿고, 가슴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면담에서 재즈 연주자가 꿈인데, 그게 서울대생 신분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물은 학생에게 장 교수는 지금 당장 그 길을 가라고 한다.

남들이 다 가려는 길에서 내려와 자기 마음이 이끄는 ‘길 밖의 길’로 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해답없는 이 거대한 구조의 폭력은 무력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울대생이 아닌 사람에게도 유효하다. “인기 직종을 위한 1000 대 1 허수 경쟁에 들러리 서지 말고, 길 밖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데이터 입력과 통계를 활용한 양적인 연구방법론에 정통하며 구조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미국 배경의 사회학자이다. 그래서 그의 행복론을 단순히 흘려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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