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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조 영욕의 60년] 오심의 역사-6.아람회 사건

[한국법조 영욕의 60년] 오심의 역사-6.아람회 사건

기사승인 2011. 09. 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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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만에 무죄 판결 받아
서울 서초로에 있는 대법원 전경.

[아시아투데이=유선준 기자] 군사정권인 전두환 정권 때는 정부에 비판적인 개인이나 단체에게 반국가단체로 누명을 씌운 후 사법부에 넘겨 유죄를 선고하게 했다. 물론 사법부는 군사정권의 총·칼 아래 어쩔 수 없이 무고한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억울하게 피해를 받은 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와 같이 정부의 조작 하에 사법부가 대표적으로 오심을 낸 ‘아람회 사건’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듬해인 1981년 전두환 신군부가 정부에 비판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평범한 삶을 살던 교사와 공무원, 군인 등을 ‘아람회’라는 이름을 붙여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몰아 중형을 선고했던 사건이다.

당시 박해전(용문중 교사), 김창근(천안경찰서 경찰관), 김현칠(대전지검 천안지청 직원), 이재권(금산새마을금고 직원)씨와 이들의 고교 은사 황보윤식(대전공고 교사)씨 등은 ‘전두환 광주살육작전’,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지시를 받은 경찰은 1981년 7월 당시 직업군인이었던 김난수씨의 딸 아람 양의 백일잔치를 계기로 김씨 집에 모인 사람들이 고교동문 친목 계모임을 만든 것을 가지고 김씨의 딸 이름을 붙여 ‘아람회’라는 가상의 단체와 조직도를 만들어 피고인들을 반국가단체 조직원으로 조작했다.

이들은 1981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대전경찰청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됐고 이후 구타를 당하고 각종 고문에 시달린 끝에 거짓자백을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잠시라도 졸면 핀으로 몸 찌르기 ▲거꾸로 매달아놓은 뒤 얼굴에 수건을 덮고 코에 물을 붓기 ▲강제로 유서를 쓰도록 강요하고 동료들의 비명소리 들려주기 등 고문을 가했다.

거짓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 조직을 적발했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고, 검찰은 황보씨 등 5명을 기소했다.

이에 대법원은 이들이 억울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은 뒤 1982~1983년 이들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0년 4월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데 이어 2007년 진실규명결정을 내렸고, 서울고법은 2009년 1월 황보씨 등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서울고법 형사3부(이성호 부장판사)는 “전두환 정권을 비난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박씨 등을 영장도 없이 충남경찰청 지하 대공분실에 가둬놓고 20일 이상 잠을 재우지 않고 물고문, 집단구타 등을 가해 허위 진술을 강요한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재판부는 “법관에게는 소수자 보호라는 핵심 과제가 있어 절대권력자가 진실에 반하는 요구를 해도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극심한 불이익을 예상되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법관의 의무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또 재판부는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 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구금을 법정에서 절규했음에도 당시 법관들은 이를 외면하고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며 “선배 법관을 대신해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시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고인이 된 이씨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평화와 행복을 찾기 바란다”고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인 박해전씨는 “아람회 사건 이외에도 많은 조작사건들에 대한 재심 판결이 하루 속히 이루어 질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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