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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19일 발표한 2012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전국 학교 현황.
 교과부가 19일 발표한 2012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전국 학교 현황.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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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화, 줄 세우기 전략은 참 쉽다. 시험 문제 출제도 쉽고, 채점도 쉽다. 이를 활용하기도 쉽다. 등수가 쭉 적힌 자료를 공개하기만 하면 만사 OK다. CEO 출신 대통령과 경제학자 출신 교과부장관을 둔 대한민국 교육계의 줄 세우기는 '해도 너무한다'는 지적이다.

전국 초중고는 2008년부터 국영수 몰입교육에 '올인'하고 있다.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통한 '시도교육청과 학교'의 줄 세우기 전략이 성공한 탓이다.

교육청은 교과부 평가를 잘 받아 특별보조금을 더 타려고 학교들을 들볶는다. 눈치 9단인 학교는 학교 성과금을 더 받기 위해 학생들을 문제풀이로 내몬다. 일제고사 성적을 높이기 위해 멀쩡한 학생을 특수반에 집어넣는 변칙도 용인된다. 충북의 교감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가르쳐주는 반칙도 벌였다.

이 결과 교과부는 해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주호 교과부장관이 이뤄낸 성과(?)다. 이런 성과주의 앞에서는 오후 10시까지 '야자'를 하며 국영수 문제풀이에 허우적대는 학생들의 눈물은 안중에 없다.

"시험이라고 공부해봐야 좀 지나면 기억도 안 난다", "강압에 의해 45분 동안 앉아 있는 훈련을 받는 것 같다"란 내용의 유서를 적어놓고 지난 17일 자살한 한 여중생의 죽음도 성적 줄 세우기 전략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획일적인 폭력학교 서열화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대책도 올해 10월쯤이면 대성공이란 보도자료가 배포될 가능성이 높다. 매 학기 초 실시하기로 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학교별 줄 세우기 식으로 공개하기 때문이다. 일제고사 결과 발표 방식을 채용했다는 얘기다.

교과부는 지난 1월 초중고생 559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20일부터 공개한다고 19일 밝혔다. 기자들에게는 전체 학교 명단과 응답 결과를 엑셀파일로 제공했다.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학교 폭력이 가장 많은 학교와 교육청이 그대로 드러났다. 인천의 한 학교는 졸지에 학교폭력 '클린' 학교로 집중 조명을 받게 됐다. 그러나 정반대인 학교와 교육청은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이날 교과부가 발표한 결과는 엉터리일 가능성이 높다.

<헤럴드경제>를 보면 교과부 조사의 회수율이 한 자리 숫자인 학교는 무려 1906개교에 달한다. 학생 정원보다 회수된 설문지가 많은 학교도 있었다. 회수율이 100%를 넘는 학교는 덕도초(부산 강서구), 서도초(대구 서구) 등 204곳에 달했다. 동산초(경북 청도군)의 경우 회수율이 367%(전교생 3명에 응답수 11건)나 됐다.

이부영 서울 강명초 혁신부장은 "'초등학생에게 일진이 있느냐, 폭력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식으로 물으면 그 답은 고등학생의 인식 결과와는 다를 것"이라면서 "이런 인식 차이는 시도별 도농별로도 큰 차이를 나타낼 것인데 획일적인 폭력학교 서열화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의 줄 세우기 전략은 성공을 예비한 전략이다. 폭력학교 줄 세우기를 지켜본 학교와 교육청의 이후 대응은 훤하다. 가만히 있을 학교와 교육청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들은 '탈출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그것은 2학기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비한 학생 사전 정신교육 등의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2학기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의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학교폭력 대폭 감소'란 제목을 단 보도자료 작성이 가능하게 될 것임이 뻔하다.

"교권 돌려주겠다"는 조현오 경찰청장이 더 순진

저들은 이런 성공의 이유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의 결과라고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바람직하지 않다. 줄 세우기 전략에 따른 왜곡된 실태 조사 결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거짓 성공이란 얘기다. 차라리 조현오 경찰청장의 다음과 같은 약속이 더 순진해 보인다.

"4월 말까지 학교폭력을 근절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 직이라도 걸겠다. 비정상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 후에 교사에게 (교권을) 돌려주겠다."(2월 13일 경찰청 기자간담회)

4월 말까지 학교폭력을 소탕하겠다는 조 청장의 다짐을 교과부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4월 말 이후에도 폭력학교 줄 세우기 전략을 통해 학교폭력을 잡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하지만 교과부의 행동은 거짓 결과를 만들어 성공을 자축하기 위한 영악한 행태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뒤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는 성숙한 교과부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치료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덧붙이는 글 | 인터넷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태그:#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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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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