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급급, 집중한다며 대충 때우는 ‘집중이수제’

송현숙 기자

졸속 도입 중·고교 부작용

서울 강남 지역의 중학교 2학년 ㄱ양은 1주 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 역사과목 시험을 앞두고 한숨부터 내쉰다. 시험범위가 교과서 절반인 200쪽에 달한다. 지난해 2학기에 역사 수업을 받은 서대문구의 중학교 2학년 ㄴ군은 “워낙 진도가 빨라 뭘 배웠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부터 도입된 ‘집중이수제’ 때문이다. 집중이수제란 일부 과목을 한 학년이나 특정 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는 제도다. 한 학기에 배우는 과목 수를 8개로 줄여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또 수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해 학습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도 작용했다. 지난해 중1과 고1을 대상으로 실시한 데 이어 올해는 중2, 고2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초 취지인 ‘집중’에 몰입하다보니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덕이나 사회, 기술·가정 등은 1주일에 3~5시간 몰아서 수업하다 보니 시간에 쫓겨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도를 나가는 일이 잦다. 시험범위도 엄청나게 늘어난다. 1년에 3학년치를 배워야 하지만 아예 한 학년치를 끝내지도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뭐 그런 수업이 있느냐” “우리가 실험용 쥐냐”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24개 초·중·고교 교사 3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56.4%가 집중이수제에 대해 “교육목적과 어긋난다”고 답했다. ‘학습부담을 줄이고 의미 있는 학습활동 전개에 도움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교사 55.6%가 “별 도움이 안된다”고 답했다.

진보·보수를 막론한 교원단체들도 집중이수제에 대해 비판적이다. 문제점이 너무 많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총은 지난해 교과부에 “집중이수제로 학기마다 배우는 과목이 학교마다 달라지면 학생들은 특정과목을 아예 배우지 못하거나 중복수업을 받게 된다. 내신 유불리와 교원수급 불균형 문제도 생긴다”며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15일 “집중이수제는 당초 목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오는 23일 교과부와의 단체교섭에서 각 학교가 집중이수제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신성호 전교조 정책연구국장은 “학생들의 발달단계를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집중이수제를 졸속으로 도입해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집중이수제로) 기초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고학년 과정을 다 배우는 경우가 많아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교육감협의회에서도 “집중이수제로 음악·미술·체육이 특정 학기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예체능 과목은 집중이수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과부의 인식은 다르다. 교과부 관계자는 “일부 민원이 올라오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하는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여러 의견을 취합해 올 상반기 중 집중이수제의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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