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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의 아이 행복이 내 아이 행복이다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

▲ “내 아이만 잘되면 돼”… 차별과 경쟁을 확대 재생산하는 부모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15년간 회사를 다니다 3년 전 퇴직한 ㄱ씨(48)는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살다 지난해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왔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학원이 많은 곳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자식이 좋은 학교 가는 걸 반대할 부모가 누가 있나요. 사회적 지위와 직결되는 건데 당장 부담이 되더라도 투자를 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작은 규모의 회사로 옮기느라 급여는 줄었지만 아이 학원비를 아낄 수는 없다는 것이 부인과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에게 교육은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울산의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인 ㄴ씨(53)는 “아이가 셋인데 학원 보내랴 학습지 공부 시키랴 사교육비 대느라고 잔업에 특근을 늘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그런 구조 속에 완전히 기어들어 살다 보니 옴짝달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사교육을 시키면서 내 자식을 노동자로 키우지 않으려는 내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회의적인 순간들이 많다”고 말했다. 자녀 교육이라는 거대한 ‘이념’이 부모의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 공릉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지난 9일 의상디자이너와 줄넘기 선생님, 화가, 요리사, 대통령 등 장래희망을 종이에 적은 뒤 환호하며 들어 보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서울 공릉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지난 9일 의상디자이너와 줄넘기 선생님, 화가, 요리사, 대통령 등 장래희망을 종이에 적은 뒤 환호하며 들어 보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교육문제에 관한 한 모두가 박사급’이라는 한국의 부모들이 말하는 교육은 ‘내 아이’ 교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자식은 고상하게 폼 잡으며 일하길 원한다” “행여 경쟁에 뒤처진 아이가 나중에 부모 원망하는 걸 듣고 싶진 않다”는 식이다. ‘남의 아이’를 밟고 올라서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목표들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내 아이가 남의 아이에게 밟혀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한 불안감의 다른 표현들이다.

이 같은 부모들의 인식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2009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과 부산의 조선업체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차별이 화제가 됐다. ‘통근버스 탑승 시 정규직 직원은 1~23번 좌석, 협력업체 직원은 24~45번’이라거나 ‘정규직은 주황색 식권, 비정규직은 노란색 식권 사용’이라는 식이다. 고용 형태가 다를 뿐인 것을 ‘차이’가 아니라 ‘차별’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들이었다.

결국 “내 아이는 버스 뒷좌석에 앉거나 노란색 식권 사용을 강요당하는, 차별받는 사람이 되게 하기 싫다”는 인식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면서 과도한 사교육비 투입이라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부모들의 인식은 다시 아이들에게 전염되고 있다. 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오기라도 하면 “몇 동 사니?” “아버지는 뭐 하시니?”라는 질문이 뒤따르고 친구가 돌아가면 “그 아이와는 떨어져 놀아”라는 말이 부모에게서 나온다.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단지에 사는 아이들이 인근의 소형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과 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대다수의 부모는 자녀가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길 바라며, 극소수의 ‘상류층’ 부모는 지위 유지를 바라며 ‘교육’을 ‘신분 획득·세습’의 도구로 이용하는 사이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지난해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어떻게 살고 계세요’ 보고서를 보면 한국 내 빈곤선(중위소득 60%) 이하 수입을 올리는 저소득층의 평균소득은 빈곤선보다 4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빈곤선이 1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저소득층의 평균소득은 53만원에 그친다는 뜻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차이의 폭이 가장 컸다. 부의 쏠림이 한쪽으로 기운 정도가 가장 컸다는 의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돈벌이를 해도 빈곤선, 즉 인간다운 삶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으로 중산층이 사라지고 상하위 계층 간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사회경제적 지원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의 가난은 아이들에게 증폭돼 나타난다. 더구나 빈곤을 개인의 무능력이나 게으름 탓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 빈곤계층의 아이들은 더욱 더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부모들이 내 아이만 챙기는 사이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 중 빈곤가정에 속하는 아이들 130만여명은 아직도 가난의 그늘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에서 앞서있는 이른바 ‘있는 집 자식’이나 ‘공부 잘하는 아이’마저도 불행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초에 이어 올해까지 잇달아 카이스트 재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하면 서울의 한 외국어고에서는 1~2등을 다투는 학생이 시험 문제지를 훔치다 적발돼 퇴학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내 아이’만을 챙긴 교육의 비극적인 단면들이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부모 세대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과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에 겪는 불행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을 넘어 모두가 우리 아이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참여방법: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의 취지와 내용에 공감하는 이는 누구나 서명운동 홈페이지(www.7promise.com)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트위터(@7promise)도 열려 있다.

<경향신문·고래가 그랬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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