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관한 집단광기, 이대론 안된다는 결심 때문에 참여”

송현숙 기자

학부모 6인의 약속

아이가 태어났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한해 한해가 가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조금씩 힘들고 고통스러워졌다.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세상을, 교육현실을 탓하며 다른 부모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길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 때문에 잘못되면 어쩌지?’ 아이의 앞날 앞에선 흔들렸다. 그러다가 경향신문과 고래가 그랬어 교육연구소가 함께 진행하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을 만났다. 반가웠다.

약속 참여자 중 5살에서 고1까지의 자녀를 둔 엄마, 아빠 6명이 지난 11일 저녁 경향신문사 회의실에 모였다. 모두들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살리는, 7가지 약속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갈망했다. 이들은 마음을 다잡고, 주변에도 적극 알려 원하는 세상이 일찍 오도록 하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역시 학부모이자 약속에 동참한 배은정씨가 이야기를 이끌었다.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에 참여한 부모들이 좌담회에 앞서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왼쪽부터 심동우, 박미란, 배은정, 이수정, 장희주, 노시훈씨 | 서성일 기자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에 참여한 부모들이 좌담회에 앞서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왼쪽부터 심동우, 박미란, 배은정, 이수정, 장희주, 노시훈씨 | 서성일 기자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교육에 관한 집단광기, 이대론 안된다는 결심 때문에 참여”

-어떤 생각으로 약속운동에 참여하게 됐습니까.

장희주(이하 장)=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에요. 새벽에 일어나면 여러가지 고민들로 심란한데 요즘은 우리집 아이들과 학교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요즘 아이들은 분노가 많아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가득 찬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신문을 폈는데 기사를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너무 반가웠고 그 길로 약속을 했죠.

이수정(이하 이)= 아이들을 보면서 매 순간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공감이 가 서명을 하긴 했는데 ‘나 혼자만 하면 뭘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편으론 ‘이렇게 한명씩 한명씩 약속하면 세상이 바뀌겠지’라는 기대도 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시시때때로 갈등하는 나 자신을 다잡으려는 의미에서 약속에 참여했습니다.

심동우(이하 심)=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쿨’하게 ‘괜찮아 공부가 다가 아니야’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가 이 사회에서 잘 살아남도록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와 ‘이렇게 사는 게 과연 행복할까’ 하는 두 갈래 고민이 생기더군요. ‘고래가 그랬어’를 통해 캠페인을 알게 됐습니다.

노시훈(이하 노)=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봤습니다. 짧지만 하나하나 깊은 공감이 되는 글이어서 즉시 약속했지요.

박미란(이하 박)= 스마트폰으로 우연히 보게 된 기사 내용이 좋아 동참하게 됐어요. 주변에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정보를 찾아다니는 소위 극성 엄마들이 많아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약속 후 큰아이로부터 ‘엄마 멋진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죠.

-그러나 막상 부모의 입장에 서면 현실적인 고민이 적지 않죠.

박= 애들에게 놀라고 하면서도 아이들이 놀이터에 갔다가 놀 애들이 없어 돌아왔다고 하면 내심 기뻐요. 내 마음에 이중성이 있는 겁니다. 마음에서 우러나 놀게 해주고 아이들을 이해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고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장= 아이가 밤 12시까지 학원숙제를 할 때가 많은데 그걸 보기가 괴롭고 싫어요. 왜 미리 하고 일찍 자지 않느냐고 싸우다가 어느날 문득 아이들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애들을 쪼고 있었다는 반성이 되더군요. 나 스스로 늘 불안한 겁니다. 아이들이 계속 놀지는 않을까, 제때 스스로 일을 못하는 아이들로 크면 어쩌나 하는 불안들이죠. 마음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하는데 한편으로 내가 불안하니 어느새 지시하는 엄마로 돌아가 있더군요.

심=아이들과 있는 게 좋아서 육아휴직도 해봤어요. 집에서 2년간 아이를 키워보니 우리 애는 한가해도 아이 친구들이 모두 너무 바쁘더군요. 저희 애는 태권도 하나만 다니는데 친구들은 놀 시간이 방과후 한시간 정도밖에 없어요. 시간이 없으니 그 시간에는 정말 미친 듯이 놀아요. 또 큰애는 학교에 입학한 지 몇 달밖에 안됐는데 벌써 공부와 시험점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내가 봐도 시험이 너무 어려운데 100점 맞는 애들이 수두룩해요.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눈에 보여요.

이= 가장 큰 고민은 정말 아이가 원하는 일을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점이죠. 얼마 전 친구에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주변에 영화를 좋아해서 관련 일을 하는 지인이 있는데 월 50만원으로 생활이 안돼 지금도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는 얘길 하더군요. 그 얘길 듣고 정말 공부를 막 시켜야 할지, 아이 뜻에 맡겨놓을지 고민스럽습니다.

장희주·박미란·심동우씨(왼쪽부터)

장희주·박미란·심동우씨(왼쪽부터)

▲ 장희주 “신문 기사 보고 눈물 왈칵, 그 길로 바로 ‘약속’했죠”
▲ 박미란 “결코 쉽지 않았던 약속… “엄마 멋져”란 말에 행복”
▲ 심동우 “제자들 가르치며 안타까움… 어떤 일 하든 대우 받아야”

-7가지 약속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건 무엇이었나요.

박= 경험상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게 성공’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저는 대기업에서 일했는데 정말 재미없게 회사를 다녔죠. 아침에 얼굴 찡그리며 출근해서 뒷담화로 상당시간을 보내고 기계처럼 왔다갔다하는 생활을 10년 동안 했습니다.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을 단 한명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늘 딸에게 ‘인생에서의 행복’과 ‘부모로부터의 독립’ 두 가지를 늘 강조합니다. 이 말을 하면 딸이 ‘길에서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아?’라고 물어봐요. 아이가 자신이 하는 일을 정말 보람 있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대답해 줬죠.

이= 저도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학생인 큰아이가 얼마 전 어떤 어떤 직업이 돈을 많이 번다고 얘기하더군요. 학원 선생님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소개해 줬다고 했어요. ‘돈 많이 버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해야 행복한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노= 사회 전반이 직업을 차별하는 게 문제입니다. 직업체험 시설인 ‘잡월드’에 갔더니 아이들은 소방관 체험을 즐거워하는데 부모들은 의사, 판사 체험에 줄 서길 원하더군요.

심= 저는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한다’는 항목에 가장 공감했습니다. 일반 공립고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졸업 후 자기 뜻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공부를 썩 잘하거나 어느 한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없다면 대개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지요. 수업시간에 월급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써봐라는 작문을 자주 시키는데 아이들이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어떤 일을 하든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 결국은 3번(하고 싶은 일 하는 것이 성공)과 4번(남의 아이 행복이 내 아이 행복이다)이 이어지는 겁니다. 저는 ‘대학은 선택이어야 한다’에 동의합니다. 우리 애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중학교 때 인정하게 됐습니다. 성적 자체가 높고 낮은 것을 떠나 아이가 공부에서의 성취를 즐거워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대학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박= 언니 오빠들의 학비로 부모님이 힘들어하셨어요. 정의의 용사처럼 내가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하고 상업고 졸업 후 항공사에 취직했습니다. 처음 들어갔을 땐 대우도 괜찮았고 좋았는데, 똑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을 받는 걸 알고 배신감을 느꼈어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해 대기업에 입사했지요. 유럽에선 전문적인 일을 필요로 하는 직종만 대학을 가는데, 우리는 같은 일을 대졸, 전문대졸, 고졸이 하면서 차별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제 딸들이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대학에 가기 싫다면 그 뜻을 존중할 겁니다.

장= 반드시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유치원에서부터 경쟁교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향후 캠페인이 어떻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장= 캠페인이 정말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해가 갈수록 왕따문제 등 아이들의 인성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공부 잘 시켜서 성공하는 것뿐 아니라 함께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이 더 많이 학부모들의 마음에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노= 우리 교육문제를 생각해 보면 사회가 집단광기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은 제정신을 찾게 하는 캠페인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모여 집단적인 힘을 발휘한다면 사회가 변할 것입니다.

배= ‘그러면 대안이 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안이 이미 충분히 있다면 왜 이 지경이겠습니까. 이대로는 안된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야말로 대안의 출발이고 가장 큰 대안이라고 봅니다.

박= 우선 주변에 많이 알렸으면 좋겠어요. 카톡을 통해 올렸더니 전혀 공감하지 않을 것 같았던 주변의 극성 엄마들도 너무 좋은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 선뜻 호응하더군요. 아이들을 잡으면서도 내심 굉장히 괴로웠던 겁니다. 요즘 주변 3명에게 약속 알리기를 하던데 e메일보다는 휴대폰을 이용해 전달하는 간편한 방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심= 내 아이를 이렇게 키운다는 점에 대해선 100% 동의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내 아이만 건강하고 스트레스 덜 받게 키우자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분들이 아이를 다르게 키우는 사례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런 분들일수록 자녀들이 외국에 가 있거나 특목고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장= 이 캠페인이 불처럼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 왔는지, 아이들을 살리고 있는지 죽이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7가지 약속

(1) 지금 행복해야 한다
(2) 최고의 공부는 놀기
(3)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성공
(4) 남의 아이 행복이 내 아이 행복
(5) 성적이 아니라 배움
(6) 대학은 선택일 뿐이다
(7)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

※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에 공감하는 분들은 홈페이지(www.7promise.com)에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고래가 그랬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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