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좋아하는지 모른 채, 눈치만 보는 아이였다”

송현숙 기자

일방적 훈육으로 불행한 성장기 보낸 엄마의 고백

‘엄마가 낳았다고 내가 엄마 거야?’ 유선희씨(35·서울 행촌동)는 어렸을 때 이 말을 수없이 외치며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속에서만의 외침이었다. 겉으론 엄마의 말이라면 뭐든 듣는 모범생 딸이었다.

엄마는 늘 엄하고 무서웠다. 집안이 가난해 공부를 하지 못한 어머니는 3자매 중 맏딸인 유씨에게 늘 “공부만이 행복한 길을 열어준다”며 공부를 강조했다.

늘 1등을 해야만 만족했고,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으면 대번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른 아이들은 다 골목에서 노는데도 그는 혼자 집에서 공부해야 했다.

엄마는 “공부 못하면 치킨집밖에 못한다”며 다그쳤다. 점수가 조금만 떨어져도 유씨는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절망스럽고 무서웠다.

유씨는 “어머니는 좋은 음식을 해 주고 좋은 것을 입히면서 부족함 없이 나를 키웠지만, 내 마음이 어떤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씨의 말대로 그가 “눈치를 보는 아이, 불행한 아이로 자란” 것은 당연했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어머니의 취향을 염두에 뒀고, “역시 안목이 있어”라는 칭찬을 받아야 안도했다. 유씨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중학교 진학 후 성적이 떨어졌다. 한번 떨어진 성적은 오를 줄 몰랐고 유씨는 그대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달래던 엄마도 나중엔 포기했다.

유씨는 “엄마도 절망하셨지만 나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씨는 성적이 떨어지면서 자살도 생각했고, 엄마가 죽는 상상도 여러 번 했다.

공부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대학진학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다그치지만 않았어도 적성을 찾아서 즐겁게 공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유씨는 지금도 엄마에 대한 섭섭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원망으로 인생을 보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한국알트루사여성상담소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모녀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비로소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결과 재작년 8년 동안의 동거를 결혼으로 연결했고, 지난 3월엔 낳지 않을 생각이었던 아이도 낳았다. 예쁜 딸을 볼 때마다 유씨는 “행복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의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불완전한 존재인 부모가 자신의 생각대로 아이가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늘 돌아보며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모가 아이를 여유 있게 키울 수 있다. 나처럼 불행하게 성장하는 아이를 만들어 후회하지 말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 ‘나도 약속’ 서명에 참여해 주세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시리즈는 끝났지만 캠페인은 계속합니다. 캠페인에 공감하는 분들은홈페이지(www.7promise.com)에서 서명을 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고래가그랬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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