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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사람은 넘치는데, 쓸만한 인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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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04 06:00:17   폰트크기 변경      
고부가가치 기술인력 양성 시급 한 목소리
 #1. 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대형사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플랜트 전문인력 수급 실태를 면담 조사한 결과, 업체당 필요 인력은 1000명, 그러나 실제 확보 인력은 50명 남짓이었다. 조사에 응한 대형사의 한 임원은 “플랜트 붐 속에 기계·전기·화학공학 전공자가 절실하지만 이들의 입사 우선순위는 자동차, 중공업, 석유화학, 그 다음이 건설”이라고 말했다.

 #2.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최근 대한토목학회 특별강연에서 신입사원 2명을 해고한 사연을 소개했다. “중동현장 파견을 거부했기 때문인데,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당부했지만 끝내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건설 인재난은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발주기관이 함께 풀어야할 과제”라며 글로벌 인재육성을 위한 산학관 공조를 강조했다.

 건설산업이 직면한 인재부족난의 단면들이다.

 오병오 GS건설 상무는 “요즘 건설사 인사 파트의 최대 현안은 EPC 전문인력난이며 기계, 설비에 정통한 글로벌 인재가 절실하지만 교육시스템이 따라오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아쉬워했다.

 프로젝트 포기 사례도 나온다. 최근 사우디에서 플랜트 시공권을 따낸 다른 대형사의 공동시공 제안을 받은 중견 A사는 이를 거절했다. 기계와 전기 담당 전문인력 확보 길이 막막했던 탓이다.

 A사 관계자는 “투입할 인력 구하기도 어렵고, 있는 인력도 해외현장은 기피한다”며 “해외현장은 물론 국내현장마저 전문인력난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 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플랜트 인력 중심의 스카우트전도 치열하다. 국내 건설사끼리 얼굴을 붉히는 사례도 빈번하다.

 최근 플랜트 핵심인력을 경쟁사에 뺏긴 대형사의 한 임원은 “최소한의 선은 넘지 않는 배려의 문화가 필요하다”며 “스포츠선수처럼 이적료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산업계 차원에서 논의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하소연했다.

 핵심 인력 몸값은 치솟고 이는 고스란히 원가부담,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다른 한 대형사 임원은 “최근 사원을 충원했는데, 수십년간 중소기업에서 근무한 임원인 아버지보다 초봉이 많다고 하더라.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신규 사원의 안착을 도울 멘토제마저 이직 가능성을 사전에 포착, 예방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정도다.

 그러나 스카우트 외엔 필요인력 충원방법이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플랜트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한 민간기관의 교육팀장은 “협회, 단체, 기관별로 경쟁적으로 플랜트 교육을 하고 있지만 실상 ‘수박 겉핡기 수준’”이라며 “고도기술인 플랜트 특성상 관련 전문가를 찾기도 어렵고 관련 노하우도 기업기밀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플랜트 전문가를 제대로 키울 곳은 원자력발전소 설계를 맡는 한국전력기술(KOPEC) 정도이며 플랜트 전문인력의 양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는 이미 예견된 상황이지만 앞서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상호 GS건설경제연구소장은 “1983년과 1997년 직후 두 차례 해외건설 붐이 꺼지면서 건설사별로 대대적 구조조정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라며 “향후 10년 이상 플랜트 호황이 이어진다는 확신만 있었어도 정부나 산업계가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박희태 대림산업 상무는 “부장급과 3~4년차 직원들을 이을 10~15년차 중간허리가 사라져 갭을 메우기 위해 5년치 교육을 2년에 끝내는 조기전력화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스카우트 외엔 묘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더 큰 문제는 기술부문별로 과잉·과소공급으로 치닫는 건설기술인력 수급체계 전반의 수술, 보정작업이다. 전체 건설기술인력만 해도 심각한 초과공급 상태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의 집계치를 보면 작년 말 기준 미취업 기술자만 16만2913명이다. 전체 기술인 4명 중 1명이 넘는 27.0%가 놀고 있다. 게다가 건축·토목 기술자가 전체 기술인력의 80.3%를 차지하는 등 기술인력 공급 불균형도 심각하다. 관련 학과 졸업생들이 매년 쏟아지는 데다 통계에 안 잡히는 구직포기자 등까지 감안하면 실제 초과공급 규모는 훨씬 심각하다는 게 기술인협회의 추정이다.

 반면 어떤 분야의 인력수요가 어느 수준으로 팽창할 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힘든 상황에서 해법은 기존 기술인력의 재교육뿐이다. 관련 프로그램을 더욱 고도화, 정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기술인협회 관계자는 “토목·건축과 플랜트처럼 호환이 힘든 공종도 있지만 정부, 업계, 학계가 공조해 정교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운용하면 현장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경력기술자 특성상 신규 인력보다 훨씬 낫고 특정 공종의 실업난도 완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 유망한 인재가 선뜻 건설을 선택할 여건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윤석진 삼성건설 상무는 “요즘 대학생들은 기업을 선택할 때 산업비전과 전망을 중시하며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건설업 자체가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할 것이란 믿음을 줘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건설경기 활성화를 통한 산업활력 제고책도 필요하지만 업계 스스로 새 성장동력을 통한 비전을 찾아야 우수 인재들이 건설업 진입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젊은 층의 건설업 기피, 현장 기피 문제는 모든 산업계의 공통적 고민이며 글로벌시장의 급격한 변화 추세를 고려할 때 더 중요한 과제는 건설산업의 첨단화, 지식산업화를 위한 노력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김재윤 현대건설 상무는 “수출 기반 한국 경제의 10년, 15년 후 발전방향을 생각해 보면 이동통신 등 일부 독과점 산업을 뺀 모든 부문에서 해외근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건설산업이 과거 부패 등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새 비전 아래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인재들도 자연스럽게 건설을 찾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실과 괴리된 대학교육 문제는 학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토목학회가 5월말 ‘토목공학 교육-우리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가’란 주제로 개최한 교육 발전방향 토론회가 대표적 사례다.

 김문겸 한국공학교육학회장(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은 “획일적 교육 커리큘럼과 현장실습 부족이 대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정부와 건설업계, 대학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개방형 엔지니어’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박노일팀장, 김국진기자, 봉승권기자, 최남영기자, 신아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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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부
김국진 기자
jinny@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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