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없나 "경제 논리로 폐교 결정, 지역 교육 명맥 끊길 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남 산청군 경호중·고교 1학년 중학생들이 12일 오후 교실에서 한 줄로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이선규 기자

12일 오후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들녘은 양파 수확철을 맞아 농민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들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산청 경호중·고교 교실에선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선생님 앞에 한줄로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학생 수는 5명. 이 학교 1학년 전원이다. 공부하는 모습이 빨랫줄에 앉은 제비들처럼 다정했다.

이현조 학교장은 "올해는 신입생이 5명이나 돼 이렇게 수업할 수 있는데 내년이 참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바로 앞에 있는 금서면에서 유일한 초등학교인 금서초등학교에 6학년생이 단 1명 뿐이기 때문이다. 내년 신입생이 현재로선 이 학생 한 명뿐이란 뜻이다.

경남 초·중·고
314개교 36%가 대상

"교육기회 박탈"
교사·학부모 등 반발
지자체는 긍정 입장


중·고통합학교로 중학생 12명에 고등학생이 42명인 경호중·고교는 지난해에도 산청읍에 있는 중·고교와 통합이 거론됐지만 지역 주민들이 반대해 존치됐다. 이 학교가 없어지면 어린 학생들이 12km나 떨어진 산청읍까지 매일 20분 이상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학교는 또다시 폐교 위기에 놓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17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이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학급수 최소기준이 초·중학교는 6학급·고교는 9학급, 학급당 학생수는 20명 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경호중·고교처럼 시골의 작은 학교들은 상당수가 통폐합 대상이 되고 만다.

경남의 경우 초·중·고교 974개 가운데 314개교(36.8%)가 최소 기준치에 미달돼 폐교 대상이 된다. 초등학교는 전체 512개교 가운데 226개교, 중학교는 273개교 중 79개교, 고등학교는 189개교 중 27개교가 이에 해당한다. 경남에선 소규모 학교가 특히 많은 서부경남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동군은 지역내 전체 33개 학교 가운데 72.7%에 해당하는 24개교가 통폐합된다. 함양군은 69.6%(23개 중 16개), 합천군은 68.6%(35개 중 24개), 의령군 68.2%(22개 중 15개), 산청군 67.9%(28개 중 19개)나 해당된다. 

이를 두고 교육계와 학부모, 지자체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통폐합을 반대하는 측에선 이번 개정안이 1980~1990년대에 농촌학교 통폐합 추진을 할 당시 교육당국이 기준으로 내세운 '1면 1학교' 정책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일률적인 통폐합 정책이 심각한 지역사회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현조 학교장은 "시골에는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 등 열악한 가정환경에 놓여 있는 학생들이 많은데, 단지 학교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폐교해 버리면 이런 학생들은 교육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조 모(58) 교사는 "고령화시대를 맞은 일본의 경우는 학생이 단 1명만 있어도 폐교하지 않는 걸로 안다"면서 "모든 국민에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효율성만 따지는 교육정책은 추진되선 안된다"고 말했다.

농민 권 모(56)씨도 "도시처럼 교통이 발달된 것도 아니고 농번기에는 등·하교를 챙길 겨를이 없는데 학교까지 멀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며 "시골에 학교가 없어지면 요즘 한창 인기인 귀농도 결국 위축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단체와 전교조 등도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11일 전교조와 참교육전국학부모회, 경남여경연대 등 13개 단체는 '농산어촌 학교 살리기 경남대책위'를 구성하고 "교과부의 시행령 개정은 농산어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를 모조리 없애려는 방안"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경남대책위는 "교과부의 이번 조치는 농산어촌의 교육을 황폐화시킴은 물론 지역공동체의 붕괴를 촉진하게 될 것"이라며 "경제논리로 지역교육을 파탄내는 시행령 개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지자체는 지역의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 '이 필요하다며 학교 통폐합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산청군청 관계자는 "학부모들은 보다 좋은 여건을 갖춘 학교에서 자녀들이 교육받기를 원한다"면서 "교육역량을 밀집시켜 집중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농어촌학교 통폐합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만큼 농촌 문제 전반에 걸쳐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탄력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선규 기자 sunq17@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