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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추모사업비 사흘 뒤 '증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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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추모사업비 사흘 뒤 '증발' 위기

피해자들 "노근리가 모든 양민학살 대표하지 않아"

미국이 제공키로 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추모사업비 중 추모비 건립에 소요될 예정이던 119만 달러가 추모사업 대상과 성격에 대한 미국과 피해자 측의 이견으로 사흘 뒤면 증발할 예정이어서 피해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2001년 노근리 사건에 대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유감표명에 대한 후속 조치 차원에서 미국이 추모비 건립 및 장학사업 명목으로 지원키로 한 400만 달러의 집행기간(5년)이 오는 30일로 종료되는 것.

정부 당국이 예산집행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미국과 교섭을 벌인 결과 400만 달러 중 장학사업에 쓰기로 한 280만 달러는 기간을 1년 연장하는 방향으로 사실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추모비 건립비용으로 책정된 119만 달러는 연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은 추모비 건립비용의 일부가 이미 설계비 등의 명목으로 사용했다는 논리로 시한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법적으로는 400만 달러 전체가 다 연장될 수는 없지만 장학사업의 경우는 법을 넘어서는 고려를 해달라고 미측을 설득한 결과 연장 쪽으로 가고 있다"며 "그러나 추모비의 경우는 연장할 수 없다는 게 확정됐다"고 말했다.
▲ 미국이 제공하기로 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추모사업비가 오는 30일로 집행 시한이 만료될 상황에 처해 있다. 사진은 충북 영동군 노근리 사건 현장. ⓒ연합뉴스

피해자들은 왜 추모사업비를 안 받나

지난 2001년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유감표명 이후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한국인 민간인 전체에 대한 위로 및 유족 지원 성격으로 예산 400만 달러를 책정했다.

이 예산은 2006년 9월 말까지 5년 사이에 전액 집행되지 않을 경우 남는 액수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간 미국이 책정한 400만 달러가 집행되지 않은 이유는 추모사업의 대상 및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를 두고 미측과 피해자측이 첨예한 입장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유감 표명 이후 노근리 사건 피해자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무고하게 숨지거나 다친 모든 민간인 피해자 전체를 대상으로 추모사업 예산을 책정했다는 입장이다.

또 해외 전쟁 피해자에게 보상한 자국 내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보상금 대신 위로금 또는 지원금으로 예산의 성격을 규정했다.

그러나 노근리 피해자 측은 이 지원금이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과 추모로만 특정해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상조사도 안 된 모든 미군 관련 민간인 피해 사건을 노근리 사건에 두루뭉술하게 넣으면 미군이 저지른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노근리 피해자들은 또 자신들이 전체 양민학살에 대한 미국의 위로금을 받을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100여 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타 지역의 양민학살 피해자들도 '노근리가 모든 양민학살을 대표할 자격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추모비의 경우 비문 문구에 '노근리'라는 단어와 미군의 가해사실 및 유감표명 등이 적시되어야 한다는 피해자측과 그런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미측이 갈등을 빚었다.

장학사업의 경우도 미측은 한국전쟁 당시 모든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을 수혜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반면 피해자 측은 노근리 피해자로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피해자측 "명분이 확실한데도 정부가 소극적" 비난

예산 집행 시한이 오는 9월 30일로 다가오면서 미측은 올 초 외교통상부에 이같은 사실을 알렸고, 외교부는 지난 4월 28일 노근리사건대책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위로금 수령을 촉구했다.

이에 노근리대책위는 지난 5월 23일 한명숙 국무총리 앞으로 청원서를 보내 추모사업비 시한 문제와 부실한 노근리 조사 전반에 대해 미국과 재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한 총리는 묵묵부답이었고, 대신 6월 30일 국무조정실장 명의의 공문을 통해 '지금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담당한 외교부와 논의하라'고 문제를 외교부 쪽으로 다시 미뤘다.

이에 노근리대책위는 다시 7월 18일 외교부에 미국과의 협상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외교부는 '노근리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재협상은 어렵지만 추모사업 연장은 논의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외교부는 이에 미국을 설득해 장학사업 예산에 한해 연장을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측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만큼 1년 후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또 장학사업에서 합의를 본 만큼 추모사업 예산도 증발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할 수 있었지만 외교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119만 달러가 증발될 위기에 놓였다는 게 피해자들의 입장이다.

노근리 미군양민학살사건 대책위원회의 정구도 부위원장은 이날 "추모사업비는 2000년 한미 양국이 진상조사를 하던 당시 한국 정부가 아닌 피해자들의 노력으로 받아낸 것인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날릴 위기에 처했다"며 "피해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국 추모탑까지 무산시킨 장본인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 비난했다.

정 부위원장은 "정부는 미국이 해외에서 저지른 양민학살에 대한 배상을 해 준 역사가 없다는 점을 들어 미국에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그러나 노근리 사건은 증거도 명백하고 이미 세계의 많은 언론에 소개됐던 만큼 명분을 가지고 미국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목록에 있던 '무초 서한' 확인에 5개월?

한편 미 행정부는 지난 4월 미국의 <AP> 통신에 의해 보도된 한국전쟁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의 서한을 확인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무초 서한은 노근리 사건이 현장 병사들의 우발적인 총격에 의해 벌어진 것이 아닌 '상부의 명령'에 의해 조직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에게 빨리 확인해 달라고 엄청나게 재촉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2000년 진상조사 당시 자료 목록에 무초 서한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서한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 뻔한 데도 불구하고 5개월 동안 확인해주지 않는 것은 미국이 이를 덮고 넘어가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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