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투표시간 연장 검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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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멀티미디어부 부장

추석 연휴가 끝나고 18대 대선이 76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철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추석을 전후해 여야 대선 후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이번 대선부터 투표 마감시간을 기존 오후 6시에서 오후 8~9시로 연장하자는 공직선거법 개정 문제가 큰 쟁점으로 등장했다.

3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거캠프는 투표시간 연장을 추진하기 위한 특별본부를 구성키로 했다. 특별본부는 여야가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법안 발의에 합의하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민주당이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는 데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할 예정이라 한다.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른 투표시간 연장의 공론화에 당력을 모음으로써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고, 나아가 연장이 성사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젊은층의 투표 참여가 늘어나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이 사안에 부정적인 새누리당의 반대로 연장이 무산되더라도 새누리당을 정치 쇄신에 반대하고 선거 약자를 외면하는 기득권 안주 세력으로 몰아가는 카드로 활용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기 위한 선거전략으로도 풀이된다.

새누리당의 경우 박근혜 후보의 이정현 공보단장은 지난 2일 KBS 라디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투표는)성의의 문제이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새벽부터 밤까지 시간에 쫓기며 먹고살기 바쁜데 성의없는 사람으로 폄하했다", "투표율이 높아지면 여당 후보에 불리한 걸 알고 부리는 꼼수다"는 정치권 안팎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측은 경기 도중에 룰을 바꿀 수는 없다며 선거 관리 및 운영의 어려움, 사회적 비용 증가 등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는 주장이다.

현행 선거법은 1971년 투표시간을 오전 6시~오후 6시로 정한 이후 4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았다. 고용계약이 불리한 비정규직 노동자 800여만 명과 날로 늘어나는 영세 상인들이 투표장에 가기 어려운 처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내놓은 선거자료에 따르면, 투표율 54.3%에 머문 18대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64.1%가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을 기권 사유로 꼽았다. 계약상 외출이 불가능했다는 응답자가 42.7%나 됐고, 자리를 비울 경우 임금이 깎여 투표하지 못한 경우도 26.8%였다. 응답자의 68%는 투표시간 연장이 (자신들의)투표참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노총은 투표시간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다양한 직종에서 500만~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 때문에 득표의 유·불리를 앞세운 정치권의 뜨거운 공방과는 별도로 유권자들 사이에 국민의 참정권을 현실에 맞게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투표시간 연장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도 캠페인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누구나 쉽고 편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일 유급 공휴일 지정과 투표시간 연장 등 선거법 개정을 청원하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트위터에는 영국 일본 이탈리아 등 투표율 제고를 위해 마감시간을 오후 8~10시로 정한 국가들 이야기나 열악한 근로환경 때문에 투표하지 못했던 사례를 담은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어쩌면 투표시간 연장을 기피하는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상대 후보가 아니라 투표 의지가 굳건한 유권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유권자들의 투표기회 확대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높은 투표율은 당선자의 대표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이며, 대의민주주의 건전성의 척도가 아닌가. 투표하고 싶은데 먹고사는 게 급해 신성한 권리를 포기하는 국민이 없도록 해 줘야 한다. 그게 국민통합을 외치고 부의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며 99%를 위한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건 대선 후보들이 해야 할 일이다. 선거 때마다 낮은 투표율을 유권자의 무관심 탓으로 돌리거나 관행적으로 투표 참여만 독려하기보다는 미흡한 제도 개선 등으로 장애물을 제거해 국민의 투표권을 평등하게 확보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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