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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지켜보며 교내 자치법정 운영 절차 배워”

입력 2012.11.19 20:18

‘그림자배심원’ 참여한 중학생들

지난 15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를 놓고 중학생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서울 성북구의 학생참여위원 25명은 이날 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그림자배심원’으로 참석했다. 대부분은 재판을 처음 보는 학생들이었다.

최근 학교에서 학생자치가 확대되고 있다. 교칙을 위반한 친구들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어떠한 징계를 내릴지 결정하는 자치법정이 운영되는가 하면, 학생회를 중심으로 ‘좋은 학교 만들기’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한다.

서울 성북교육지원청은 자율과 참여 중심의 학생자치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번 체험을 추진했다. 직접 재판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을 높이고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념을 증진시키는 게 목적이다. 성북구 학생참여위원들은 지난 10월에도 학교 교칙을 학생들 스스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논의하고 캠페인을 벌였다.

서울 성북구의 중학생 학생참여위원 25명이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북교육지원청 제공

서울 성북구의 중학생 학생참여위원 25명이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북교육지원청 제공

▲생계형 사건 법정 판결 앞두고
형량 얼마가 좋을지 열띤 토론

학생회, 학교폭력 논의할 때 도움
“가해자 얘기도 경청해야겠어요”

이날 재판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해 가출과 일탈을 일삼다 배가 고파 금은방에서 귀금속 90여만원어치를 훔친 남성(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에 대한 것이었다. 심리가 모두 끝나고 배심원단이 평의회에 들어간 사이 학생들도 모여 어떤 판결을 내릴지 토론했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징역 3년과 4년으로 나뉘었다.

화계중 지상욱군(15)은 “주위 사람들이 피고인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보고 얼마나 교화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며 “일했던 곳의 사장이나 어머니가 피고인이 성실하고 신용이 있었다고 말한 만큼 최저 형량인 3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동구여중 권예림양(15)은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배가 고파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지만 경찰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금은방을 물색하러 다니는 등 계획적으로 한 것으로 보여 진정성이 떨어졌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이런 사건들을 모두 봐주다가는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이유로 4년형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학생들 사이에 표결을 한 결과 3년형 14명, 4년형 9명으로 징역 3년이 절반을 넘었다.

학생들은 피고인의 어머니가 증인심문을 받을 때와 피고인이 직접 “잘못했다”고 최후진술을 할 때 가장 집중했다. 학생들은 재판을 보며 학교폭력 학생들에 대해 논의할 때 앞으로 어떤 것들을 중심으로 해야 할지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석관중 문민창군(15)은 “피고인의 가정환경이 우리와 달라 불쌍했다”며 “학교폭력을 다룰 때 진술서만 작성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얘기를 잘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대부중 조민기군(15)은 “절도 액수가 크지도 않고 가정형편을 봤을 때 충분히 그러리라고 이해가 된다”며 “학교 학생회에서 학교폭력을 논의할 때 뭘 얘기해야 할지 몰라 가해자가 왜 그랬는지만 단순히 알아봤는데 재판을 보면서 구체적인 절차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성여중 김고운양(15)은 “학교에서 폭력 같은 일이 터지면 가해자의 변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는데 재판을 보니 피고인에게도 자기 입장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더라”며 “이제는 가해자 학생의 의견도 잘 들어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1학기에 자치법정을 신청했는데 학교에서 안 해준다” “학생들끼리만 얘기하는 건 안된다고 선생님들이 반대해 자치법정 시행이 안됐다”는 등 성토의 목소리도 나왔다. 학생들의 자치활동 요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폐쇄적인 학교의 현실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법정체험을 추진한 이화영 성북교육지원청 장학사는 “민주주의란 책이나 선생님이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직접 회의를 주관하고 행사를 개최하는 학생자치가 활성화될 때 민주주의를 깨달을 수 있고 학교생활이 즐거워진다”고 말했다. 이 장학사는 “아이들이 선입견 없이 양쪽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하는 판사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 학생자치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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