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중학교의 87.8%와 고교의 88.9%가 학교규칙(학칙)에 색깔이나 모양, 길이 등 두발 제한 규정을 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중·고교의 90%가량이 지난 1월 공포된 서울학생인권조례(인권조례)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례는 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에 ‘학교장과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두발에 관한 한 인권조례는 이미 무력화된 셈이다. 학교 사회가 아직도 ‘학생 통제’를 구실로 인권과 자유, 자율 중시라는 세계적,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인권조례가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고 무력화된 것은 정부의 방해 때문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올해 초 조례를 공포하고 일선 학교에 학칙을 개정하라고 지시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조례 무효 소송을 내고 장관 권한으로 그 지시를 정지시켰다. 이어 4월에는 학생과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들어 두발 등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기재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쳤다. 그러자 교육청과 교과부 방침 사이에 혼란을 겪던 학교 현장의 흐름은 두발 규제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시행령 어디에도 ‘두발을 규제하라’는 내용은 없다. 대부분의 중·고교가 인권조례를 포기하고 교과부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 일선 학교의 학생 인권 의식이 그만큼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권조례의 무력화에는 곽 교육감 사퇴 후 교육감 권한대행을 맡은 이대영 부교육감의 책임도 크다. 교과부가 지난달 8일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학칙이 제·개정됐는지 파악하라는 공문을 보내자 그대로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다. 교과부 공문이 사실상 학칙의 두발 규제 확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뻔한 이상 시교육청으로서는 ‘인권조례에 맞게 제·개정하면 된다’고 부연설명해야 했다. 더욱이 인권조례는 시행되고 있고 교과부가 낸 조례 무효 소송은 진행 중이므로 일선 학교의 조례 준수를 지도·감독해야 옳다. 그러나 이 부교육감은 어이없게도 “상위법인 시행령을 따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최근 일부 학교에서는 교문 지도가 강화되면서 ‘두발 가위질’이 되살아나고 있다 한다. 무엇보다 두발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생으로서는 다시 살아난 ‘가위질 폭력’에 좌절할 수도 있다. 학생 지도가 조금 어렵더라도 변하는 세상의 가치에 적극 적응할 필요가 있다. 사실 두발 자유화가 상징하는 학생인권은 진보만의 가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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