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 상반기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부상한 뒤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2학기 개학과 함께 전국 초·중·고교에서 인성교육이 시작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국어와 도덕, 사회 시간에 학교 사정에 맞게 인성교육 위주의 수업을 하도록 했다. 초6·중2·고1 학생을 대상으로 소위 ‘프로젝트형 인성수업’을 시범 운영 중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28억여원을 들여 교재를 만들어 배포했다.
3~8일은 교과부가 정한 인성교육 실천주간이다. 교과부는 6일 서울시내 4개 초·중등학교에서 인성수업을 공개하겠다며 분위기를 잡고 있다.
그러나 일선 학교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5일 경향신문이 서울시내 국어·도덕·사회 담당교사 7명에게 확인한 결과 인성교육용 교재는 대부분 학생들의 손에 전달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들에게 교재를 나눠준 교사는 7명 중 1명뿐이었다.
서울 ㄱ초등학교의 6학년 담임 박모 교사는 “지난달 말 교재 30권을 받았지만 교무실 책꽂이에 그냥 꽂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5일 수업제 때문에 수업시간이 줄어든 데다 2학기 행사가 많아 별도로 인성교육까지 할 경우 교과서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ㄴ고교 김모 교사는 “매일 교사회의가 열리지만 인성교육용 교재가 학교에 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ㄷ초등학교 송모 교사는 “생활지도담당 교사로부터 ‘인성교육 실천주간을 운영하라고 공문이 왔으니 학생수만큼 교재를 받아가라’는 업무연락을 받고서야 인성교육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교과부는 국어·도덕·사회 교과서에서 인성과 관련된 내용을 모아 교과서 형태의 교재를 만들었다. 이와는 별도로 교사용 지도서도 만들어 배포했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 교사 2만8000명이 참가한 연수도 했다. 800만부에 달하는 교재를 제작하고 교사 연수를 위해 사용된 예산은 모두 28억8000만여원에 달한다.
교사들은 정부의 인성교육에 대한 취지는 공감하지만 교재 내용이 빈약한 데다 학사일정 때문에 인성교육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고 했다.
ㄹ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교재가 학교에 온 날 교사들끼리 ‘(교과부에서) 또 뭐 하나 만드셨네’라며 그냥 웃었다”며 “이후 아무도 교재를 배포하거나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ㅁ중학교의 한 도덕교사는 “집중이수제 때문에 2학년 때 도덕을 안 배우는 학교도 많은 데다 이미 1학기 때 배운 내용과 교재 내용이 겹쳐 막상 수업에 활용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성교육은 교재를 통한 1회용 수업보다는 평상시 학교생활에서 학생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고 생활지도를 할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ㅂ중학교의 국어교사도 “9월 말 중간고사를 보기 때문에 교과서 진도 나갈 시간이 한 달밖에 없어 교사들 모두 바쁘다”며 “인성교육 교재가 재미는 물론 감동도 없어 현장에서 활용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폭력 대책이나 인성교육은 학교 상황에 맞는 방법을 모색하고, 교사의 의지나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이 보다 중요하다”며 “달랑 소책자 하나 주고 이를 활용하라는 것은 예산만 낭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육 효과는 예산에 비례해서 단정적으로 재단할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교사 연수를 확대해 새로운 형식의 인성교육 수업이 자리를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