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속도전](4) 죽음의 속도 - 빠르게 늘어나는 10대 자살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ㄱ군(16)이 지난달 20일 한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한강에 투신하기 직전 죽음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겼다. 경찰은 ㄱ군이 남긴 메모와 유족들의 진술을 토대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었다. ㄱ군은 2학년에 올라가면서 1학년 때보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교 2학년인 ㄴ군(14)도 지난 2월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ㄴ군은 몸을 던지기 전 온라인에 “공부가 어렵다. 학원 다니기가 힘들다”는 글을 남길 정도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10개월 동안 중·고교생 1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자살원인으로는 성적비관과 학교폭력 등이 꼽혔다. 지난달 13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진 ㄷ군(18·고3)도 수능시험을 앞두고 성적 때문에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자살이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대(10~19세)는 373명에 달한다. 10년 전 223명에서 67.3%나 증가한 수치다. 자살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10대 사망원인 1위는 사고나 질병을 제치고 자살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죽음의 속도전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속도전으로 상징되는 성장만능주의에 내몰린 10대 청소년은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고 있다. 사진은 10대 청소년의 자살 순간을 표현한 그림.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효율·속도 중시하는 사회
학력·학벌만이 ‘사다리’
▲ 초교 사교육·고입 재수까지
죽음을 탈출구 삼을 정도로
10대들 과도한 경쟁 시달려
한창 꿈을 키워 나가야 할 1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왜 자꾸 늘어만 갈까.
전문가들은 각종 통계와 상담 경험을 근거로 “초·중등생까지 내려온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청소년 통계’를 살펴보면 2011년 한 해 동안 1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청소년(15~19세)은 10.1%에 달했다. 자살을 생각한 학생들 중 절반이 넘는 53.4%가 ‘학업성적·진학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죽음을 탈출구로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학업 스트레스는 지금까지 고등학생들에게만 국한됐지만 최근엔 초·중학생까지 그 연령대가 낮아졌다. 2010년 기준으로 초등학생의 86.6%가 좋은 성적을 목표로 사교육을 받고 있다. 청소년 백서와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통계를 분석한 결과 전국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초등학생은 2002년 6만4557명에서 2011년 79만5734명으로 12.3배나 증가했다. 이 중 학업과 진로 때문에 상담을 받은 초등학생은 17%에 달했다.
10대는 중학교에 입학해도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교입학 재수’도 불사한다. 2010년 전체 고등학교 입학생 중 재수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0.77%로 2006년의 0.32%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창간 66주년 특집]‘인생은 10대에 결정된다’는 조급증에 초등생부터 속도에 치여](https://img.khan.co.kr/news/2012/10/04/khan_TTDxDj.jpg)
교육현장 종사자들은 10대들이 과도한 학업 경쟁에 내몰리는 것은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경쟁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 기득권 범주와 비기득권 범주가 분명하게 구별돼 있는데 한 번 기득권 범주에서 밀려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 입시 등에서 한 번 탈락하면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판단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탈출구로 높은 학력을 요구하다 보니 10대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선진 경기 연천군 전곡중학교 교사는 “정부가 선생님들까지 경쟁시키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교과부가 학생 중도 탈락률과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미달된 학생 수 등으로 교사·학교를 평가하면서 교사들조차 경쟁구도 안에 매몰되면서 아이들에게 경쟁심리를 심어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10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른들이 과도하게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구조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위계질서화된 교육체제는 사회적 선택으로 결정된 만큼 채용과 승진, 임금 등에서 학력과 학벌로 차별하지 않는 법안을 마련해 사회 구성원에 대한 차별체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도 “경쟁에서 탈락해 실직·해고 상태에 놓이더라도 다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복지체계를 확보하는 거시적 접근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 안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이 교사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없애고 일부 학교에서 아이들의 학업성적에 따라 선생님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근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학 교수는 “동아리 활동을 학업성과로 인정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찾는 활동을 입시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인재 양성의 틀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