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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버마의 국명은 '미얀마'입니다. 그러나 이 국명은 군부가 1988년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시민 저항을 분쇄한 이듬해 일방적으로 변경한 국명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현 군사독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버마'로 표기합니다. <편집자주>

"강물이 사람 덮쳐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지난 20일 12시, 한남동에 위치한 버마대사관 앞에서 '버마태풍피해구호를 위한 국제공동행동' 항의시위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오창익 인권실천연대 사무국장은 굳게 닫힌 버마대사관 창문을 향해 "너무 악랄한 군부독재"라고 외쳤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욕을 하고 싶다!"고 부르짖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욕을 생각해내려 했다.  

 

지난 5월 3일 덮친 사이클론으로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버마를 보며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것은 자연재해의 피해 때문이 아니다. 오창익 사무총장은 자연재해는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앞뒤 상황을 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강물이 불어나면 국가가 알려주고 막아야 할 기본 책임이 있다. 어떤 예보 시스템도 마련하지 않고, 강물이 사람들을 덮치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망자를 파악하려조차 하지 않았다."

 

오 사무총장은 재해가 발생한 지 2주가 되도록 자기 국민의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은 버마군부에 대해  "독재 중에도 가장 나쁜 독재"라고 힘주어 말했다. 1985년 망원동에 한강물이 넘쳤을 때, 한국의 독재자였던 전두환조차도 당시 가장 강력한 적으로 삼고 있던 북한 구호 물자를 받아들여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지진 피해를 입은 중국 역시 어떤 외교 관계든 지원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처참한 재난사태에도 권력유지에만 혈안"

 

이에 비해, 버마 군부는 국내 외국인들의 구조 노력조차도 옴짝달싹 못하게 발을 묶어놓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피해가 발생한 후 사망자와 실종자가 13만 명이 넘어서도록 국제사회 구호 인력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 주체인 프리버마 측은 굶주림과 식수오염, 전염병 등으로 이재민 150여만 명이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군부가 "쌀 수출을 계속해 외화를 챙기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리고 군부가 "처참한 국가 재난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10일 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를 강행"하여 영구적인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프리버마는 버마대사관 당국자들을 향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과 "이 항의를 군부에 그대로 전달할 것"을 촉구했다.

 

버마 대사관 창문과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건물 2층 거울 창문에 비친 맞은 편 나무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아마 거울 창문 안으로 버마 대사관 당국자들이 항의 시위자들을 내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필 것을 울부짖음으로 알리는 이들의 외침에 문을 꼭 틀어잠그고 있는 저 침묵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영원한 것은 없다!

덧붙이는 글 | 버마태풍피해 기금 모금 - 우리은행 1002-430-128276(소모뚜, 버마행동한국) 


태그:#버마민주화, #싸이클론, #프리버마캠페인, #미얀마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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