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전형 단순화’ 토론회 학생들
‘논술·입학사정관제 수정’ 입모아
“2년간 논술만 준비했지만 수시 논술 6개 다 떨어지고 정작 정시로 대학에 입학했어요. 돈만 많이 쓰고 합격은 못해서 불효자식이 됐다는 생각에 많이 우울했죠.” 올해 숭실대에 입학한 심의혁군(19)의 말이다.
11일 오후 6시30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열린 ‘대입전형 단순화 대안에 관한 포커스 그룹 토론회’는 너무 복잡하고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대입전형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대입을 직면하고 있는 고3 수험생과 막 대입을 끝낸 대학교 1학년 학생들 20여명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논술 전형과 입학사정관제(입사제) 전형이 “수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논술 전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5명이나 됐다.
학생들은 논술 전형과 입사제가 취지에 어긋나게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에서 문예창작반 활동을 하고 있는 해성여고 구주영양(18)은 “대학 논술에서는 인용해야 하는 문구나 대학에서 좋아하는 문장, 글의 결론을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까지 다 정해져 있다”며 “지금의 논술은 진짜 글이 아니라 틀에 맞춘 생각을 체크하는 전형 같다”고 지적했다. 같은 학교 류지희양(18)은 “수시 논술에서는 ‘논신(논술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잘 써야 합격한다”며 “평범한 학생들은 논술로 대학 가기 힘들다”고 했다. 서울교대 김소예양(19)은 “현재 교육 환경을 봤을 때 입사제가 원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미리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그 진로를 위해 활동을 해볼 수 있는 상황인 건지 의문”이라며 “인위적으로 진로를 정하고 형식적으로 ‘스펙’을 쌓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열린 ‘대입 전형 단순화 토론회’에서 안상진 사걱세 부소장이 학생들에게 대입 전형 대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논술이나 입사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두는 게 옳으냐’는 부분도 논쟁이 벌어졌다. 숭실고 김동효군(18)은 “최저학력 기준이 너무 높다 보니까 결국 논술 전형도 수능으로 결정된다”며 “논술을 열심히 공부해왔는데 이제 포기 단계”라며 최저학력 기준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숭실대 1학년생인 김자윤군(19)은 “최저학력 기준이 없어지면 기본 교과목 공부를 소홀히 해 대학에서 발전된 학문을 배우기 힘들 것”이라며 “최저학력 기준을 유지하되 지금보다 낮추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입시과정의 불투명성이나 학교 시스템이 입시에 맞게 운영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가천대 이명우군(19)은 “지난해에 수시 6개 모두 입사제를 썼는데 다 떨어졌다”며 “스펙이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고,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군은 “우선 수능을 보고 그 다음에 수시를 치러서 수능에서 못 본 능력들을 체크하는 게 맞다”며 “수시 준비를 하다 보면 수능까지 못 보게 돼서 수시 탈락자들에게는 패자부활의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학교 밖에서 만든 스펙을 입사제 제출자료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대다수는 입사제 스펙 탓에 사교육 바람이 불기 때문에 학교 밖 스펙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한편에서는 ‘현재 학교 상황으로는 스펙 준비를 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여학생은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위주로 스펙을 만들어준다”며 “스펙 쌓을 기회도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진정한 입사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여학생은 “강남 학교나 특목고는 오히려 학교 안에서 좋은 스펙을 만들어준다고 하더라”며 “학교 밖 스펙을 쓰지 못하게 하면 제2의 특목고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입 전형 단순화 대안에 대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토론회는 앞으로 4차례 더 열린다. 오는 18일에는 고등학교 진로진학 상담교사들이, 25일에는 전·현직 입학사정관들이 직접 나와 토론한다. 다음달 2일에는 학부모, 9일에는 교육시민단체와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부 관계자들이 모여 대입 전형 단순화 대안에 대해 종합하는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