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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전세'의 종말, 우리는 왜 그 고생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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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전세'의 종말, 우리는 왜 그 고생을 했나"

[우석훈 칼럼] 55년 전 인구통계,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는 5년마다 한 번씩 인구 총조사를 하고, 가장 최근의 자료는 2005년까지 정리되어 있다. 때때로 샘플 자료도 보기는 하지만, 전수 조사 자료가 필요하다면 이 자료를 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자료는 1955년부터 시계열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세부 자료로 들어가면 매번 조사 때마다 조사 항목도 바뀌고 조사 기준도 바뀌어서 이 자료를 활용하려고 하면 골탕도 먹지만 그래도 소중한 자료이다. 참고로 이런 인구 조사자료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은 영국이고, 제국주의 시절에 과연 런던 시민들의 삶은 어땠고, 결혼은 어땠고, 이런 조사를 하거나 1세기 전의 사항에 대한 국가별 비교 같은 것을 하고 싶으면 생각보다 유용한 통계이다.

2005년 자료를 보면, 한국은 국민의 55퍼센트가 집이 있어서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 물론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 같지만, 주택, 다가구, 다세대 이런 것들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 그리고 국민의 22퍼센트는 전세에 살고 있고, 3퍼센트가 유형은 분류되어 있지만 무상으로 살고 있다. 나머지는 다양한 유형의 월세로 살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전세가 급격하게 줄고 있고, 이 전세를 강화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주거복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 옳은지, 나도 마음을 결정하기 위해서 이 오래된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전세는, 아마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제도일 것 같다.

1960~70년대, 한국에서 어떻게 처음 전세가 일반화되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아파트 분양이라는 제도를 시작할 때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 상세하게는 잘 몰라서 요즘 조사 중인데, 생각보다 제도의 기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당황하는 중이기는 하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건설사인 현대건설의 중역들과 연구진에도 이런저런 경로로 물어보기는 했는데, 그 시기에 건설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퇴사하고 없고, 그렇다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현장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아, 후학으로서 상당히 고전 중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전세는 한국에만 있고, 조선 중기부터 서울 지역에 곡물창고 등을 빌릴 때 그런 특수한 제도가 존재했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아파트 전세가 일반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현상으로 보여진다. 함수라는 방식으로 살펴보면, 아파트 선분양제도 그리고 높은 이자율,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한국에만 있는 전세 제도가 움직이는 경제적 공간이 생긴 것 같다. 최근 미분양의 급증과 함께 분양제가 흔들리고 있고, 또한 노무현 중반기부터 인위적으로 눌러놓은 저금리라는 두 가지 변수가 결합되어 전세라는, 30년 가까이 아파트 시장과 함께 안정적으로 작동되었던 이 제도가 흔들리는 중이다. 2005년 통계에는 아직 잡히지 않지만, 대단히 빠른 속도로 전세는 월세로 전환되는 중이고, 신규 전세는 잘 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전세는 아파트를 통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10퍼센트가 넘는 고이자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1955년, 즉 6.25가 끝나고 '재건 데이트', 남녀가 그냥 시내를 걸어다니는 방식으로 데이트를 하고 중매결혼이 일반화되었던 시절, 그 시절의 주거 점유형태를 살펴보았다.


이 그림은, 좀 충격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1955년, 우리나라 국민의 81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것이 원래의 우리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한국 전쟁까지 거친 다음, 우리가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라고 늘 하급으로 평가하던 1955년에도 한국인들은 다섯 명 중에 네 명은 자기 집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5퍼센트 가까운 사람들은 당시 조사에 '차가'라고 불리고 있던 그런 유형의 집에 살고 있었고, 셋방이라는 유형의 주거 형태는 전체의 7.2퍼센트에 불과하다. 물론 그 시기에도 서울은 워낙 외지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인지, 자가 거주비율은 51퍼센트였다.

이것은 한국이 최소한 경제발전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초가삼간'이라고 불리는 것이든, 하꼬방이라고 불리는 것이든, 경제 주체들이 80퍼센트 이상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거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어떤 OECD 국가들도 달성하지 못했던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우리가 이미 도달하고 있었던 것이고, 전후 재건 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하면 더욱 더 놀라운 수치인 셈이다.

2010년, 당시의 인구 총조사로부터 55년이 흘렀다. 일제의 강점 그리고 6.25를 의식 속에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이미 정규직으로는 은퇴할 나이를 넘었고, 55년에 태어난 사람도 이미 은퇴하였거나 아니면 곧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그 동안에 새마을 운동도 있었고, 산업화를 통한 북한과의 경제 전쟁을 명분으로 진행되었던 유신 경제와 군사 독재도 거쳤다. 어떻게 설명하든, 우리는 '경제 발전'을 지고지상의 과제로 삼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2만불 경제'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747' 등 경제 성과주의가 하나의 선이 된 셈이다.

그 동안에 정치적 가치 혹은 사회적 가치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하면서 우리는 잘 살려고 했다. 그러나 이 표가 말해주는 바는 너무 허무하다. 이 긴긴 55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민의 30퍼센트는 이제 집이 없게 되었다. 그 뿐인가? 상위 3퍼센트가 될지, 5퍼센트가 될지, 이제 더 이상 집을 사는 것은 물론 집을 전세로 구하는 것도 잘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였다. 지금의 20대는, 많은 경우 '방'을 중심으로 사유하지, 전 세대와 같이 더 이상 '집'을 중심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경제의 전면에 나서게 될 20년 후, 그 사이에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경제가 올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희박해 보인다.

전쟁 직후에도 8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55퍼센트의 국민만이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 의식주라는 경제를 구성하는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다들 인정하는 주거 복지 그리고 주거 안정성이라는 면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가?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 최저의 레저 및 문화 향수 조건, 과로, 비정규직,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지금과 같은 방식의 고강도 노동을 55년 동안이나 참아낸 것인가? 그런 경제 주체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 동안 우리는 인구도 늘었고, 주거를 제외한 의복과 식품, 잘 먹고 잘 입고 살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 출산률이 1 이하로 떨어질 그 역사적 단계를 올해인가, 내년인가, 그렇게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인구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부분적인 외부 유입을 제외한다면 우리의 인구는 이제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고향을 잃었다. 1955년, 서울에는 15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었고, 경기도에는 24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이 수치는 이제 인구의 절반이 되었고, 2000만 명이 넘는다. 수도권은 5배가 커졌다. 그리고 고향에 남은 사람들, 그들의 지역경제는 이 과정 속에서 붕괴하고 있고, 남은 사람들은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목 놓아 부르고 있다. 서울도 개발, 경기도도 개발, 그리고 나머지 지역도 개발, 이렇게 더 풍요로운 경제적 미래를 위해 열심히 토건주의로 매진하고 있지만, 산업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자기 집이 있던 사람들이 고향도 잃고, 집도 잃어버린, 이 기막힌 일이 2010년, 우리 앞에 펼쳐진 것 아닌가? 그야말로 존재론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지금의 개발 경제와 토건 경제를 끌고온 것인가?

▲ 1955년, 한 중학교 학생들의 소풍 장면. 이 당시 우리 국민의 81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55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의 주택 보유 비율은 55퍼센트로 떨어졌다. 산업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자기 집이 있던 사람들이 고향도 잃고, 집도 잃어버린, 이 기막힌 일이 2010년, 우리 앞에 펼쳐진 것 아닌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지금의 개발 경제와 토건 경제를 끌고온 것인가? ⓒ뉴시스

1995년의 29퍼센트, 그리고 2000년의 28퍼센트를 정점으로, 이 불운한 메카니즘의 중간고리를 해주고 있던 전세라는 제도는 급격히 쇠락하고 있고, 아마 멀지 않아 전세는 10퍼센트 미만으로 내려가고, 40퍼센트 가까운 국민들은 월세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4대강을 축으로, 우리는 여전히 토건의 비율을 유지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와 우리 중의 소외자들이 아니라 시멘트에게 기꺼이 국고를 내어주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이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이가 그리고 어느 곳에서 종료를 해야 할 것인가? 고향도 버리고, 거주의 안정성도 버리고, 우리가 지난 55년 달려온 이 국민경제에서 우리가 바랐던 진짜 목표는 무엇이었던가? 식구들과 편하게 살고, 쫓겨날 걱정 없는 그런 삶이 아니었던가? 사람이, 입에 세 끼 밥 들어가고, 자기 식솔들이 편하게 잘 수 있는 삶, 그런 것마저도 2010년, 재개발과 초고층 건물과 함께, 더 이상 서민들이 바랄 수 없는 꿈이 되고 있다. 지난 55년 간,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인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대통령을 축으로 하는 토건주의자들,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번영의 꿈은 더 이상 국민경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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