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짬뽕 체인점’ 유니폼을 갖춰 입은 그를 보고 누가 시민경제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이자 법무법인 소속 회계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릴까.

윤종훈(49) 회계사가 ‘짬뽕집 사장’으로 변신했다. 창업자금은 예금을 깨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3명의 직원을 두고 있지만, 서빙과 계산을 하느라 온종일 정신없이 일한다. 그는 2000년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으로 있으면서 삼성그룹의 증여세 포탈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벌였고,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 등을 집요하게 비판해왔다.

17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역 근처의 ㅅ짬뽕집에서 만난 ‘윤 사장’은 식당을 개업한 이유로 서슴없이 ‘생존’을 꼽았다. “큰아들이 올겨울에 제대해 대학에 복학할 예정이고, 둘째가 고교 2학년이에요. 한창 돈이 들어갈 때라 어쩔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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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보진영 모두가 맞닥뜨린 ‘위기’도 작용했다고 했다. “박원순 변호사 말씀대로, 현 정부 들어 진보 성향 인사와 시민단체에 대한 정권의 견제가 심해요. 하물며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들은 어떻겠습니까. 회계사는 기업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이들이 낯빛을 바꾸고 일을 안 맡기니 버틸 재간이 없는 거예요.” 그는 법무법인에서 받는 수입과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연구용역비로 생활해왔는데, 정권이 바뀐 뒤 수입이 그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법무법인과 연구소는 모두 진보 성향의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윤 사장은 생계 문제 해결이 ‘지속가능한 사회운동’과도 직결된다고 봤다.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40대에 접어들면 생계 문제로 궁지에 몰리는 경우가 많아요. 생존의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겪으면서 비현실적인 논리에 치우쳐 가는 활동가들도 있고요. 우선 생활이 안정돼야 사회를 보는 눈도 건강해져요.” 그는 짬뽕집이 성공하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생활 컨설턴트’ 구실을 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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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뛰어들고 보니 식당 일이라는 게 간단치 않았다. 음식점을 연다고 했을 때도 아내와 친지들은 “그런 일까지 해야 하냐”며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거꾸로, 가족과 소신을 지키는 일이라며 설득에 나섰다. 업종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중국 음식으로 정했고, 프랜차이즈업체의 직영점에서 3일 동안 견습 생활도 했다. 매일 12시간씩 일하며 “두 다리가 풀리고 눈이 핑 도는 중노동”을 맛봤다.

윤 회계사는 짬뽕집이 안정적인 매출을 낼 때까지 가게 운영에 매진하고 시민단체 일은 줄일 계획이다. 그는 “예전 활동들보다 음식점 일이 훨씬 어렵다”면서도 “요즘 새로운 것을 익히고 변해가는 나 자신을 보며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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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