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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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15.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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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66년 10월 11일, 프랑스의 중국해 분함대 총사령관이었던 로즈 제독은 군함 1척, 소형전투함 2척, 포함 2척, 중형 군함 1척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접근해왔다.

로즈 제독이 온 이유는, 그 해 7월 대원군이 장악했던 조선정부가 프랑스 선교사 7명을 참수형에 처한 것을 따지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함이었다.

로즈 제독은 먼저 강화도에 상륙해서 건너편 통진을 지키고 있는 이용희 장군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서한을 여러차례 보냈지만, 성과를 얻지 못 했다.

그러자 로즈 제독은 강화성을 함포사격으로 함락시키고 한강을 봉쇄하여 서울에 대한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그의 함대는 강화성 안의 주요 보물들을 약탈하고 강화성 안의 궁궐과 관아를 불태우고 파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두 파괴하고 11월 15일 강화도에서 철수한다.

로즈는 본국에 보낸 문서에 철수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한정된 병력으로 유효한 공격을 이끌어 냈고, 생존해있던 2명의 선교사들을 무사히 구출해냈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벌인 조선과의 전쟁은 정족산성 전투.

조선은 승리라고 하지만, 로즈 제독은 꽤 만족스러운 전투라고 생각하는 정족산성 전투를 끝으로 프랑스와 조선의 전쟁, 병인양요는 그렇게 끝났다.

조선은 프랑스를 물리쳤지만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의 보물을 빼앗겼다.

 

#2

정조는 1776년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건립을 지시했고, 외침에 대비해 강화도에는 외규장각을 두어 중요한 왕실의 자료를 이중으로 보관할 것을 명했다. 외규장각의 건립은 1781년에 이루어졌다.

로즈함대는 강화도에 있는 보물들을 약탈하고 방화하면서,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은괴 19상자, 대리석판, 왕실사료 필사본 등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불태웠다.

그들이 불태운 보물들은 왕실 주요 보관품 78건, 귀중 도서 804종 4,730권으로 추정되며, 소실본 중에서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본이 수 백점이 포함돼 있다.

 

#3 

외규장각 도서는 재불서지학자인 박병선 박사에 의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프랑스 함대가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을 찾아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수십 년 만에 이뤄 낸 쾌거였다.

그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핵심은 왕실의 예절을 기록한 의궤 도서 필사본 297권과 사후에 취득한 1권이다. 이 중 58권은 한국이 가지고 있지 않은 유일본이다.

 

그는 외규장각 도서를 발굴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의궤에 대한 고증이었다. 의궤가 얼만큼의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 따져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10여년에 걸쳐 297권의 의궤에 대한 해제에 성공했다. 즉 제목을 풀이한 것으로, 이제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목차를 완성한 것이다.

한 권의 분량은 백과사전 하나의 분량이라고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보물의 외부 대여가 안 되기 때문에, 박병선 박사는 매일 국립도서관으로 출근하여 끼니도 거른 채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지금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내가 잘 안다. 그 때 밥을 먹으러 나가면 그 책을 반납해야 했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책상에 들어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그곳에서 얻은 별명은 "파란 책의 동양여인" 의궤가 파란 색으로 싸여 있었기 때문에, 맨날 그 책만 주구장천 파는 박병선 박사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우리 보물의 가치를 고증해냈고, 한 권의 책을 쓰게 된다.

우리 말로 "병인년, 조선을 침노하다"(태학사)

이 책은 첫 부분은 불어로 돼 있고, 뒤에는 한글로 쓰여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의궤의 해제가 붙어 있다.

 

박사님께서 11월 2일에 프랑스로 떠나셨다. 그 날 공항에서 배웅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뒤에 계신 분은 박사님을 안전하게 비행기까지 모시는 항공사 직원.

그녀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단 하나.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반환의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 국적을 갖고 있지 않고 프랑스 국적을 가진 프랑스 사람이다.

그리고 80여 세월에서 65년을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에서 한 일은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내서 세게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고증해서 세계에 알린 일. 아무도 찾지 않았던 외규자악 도서를 수십년 동안 배곯면서 찾아내고, 또 그것을 십여년 동안 연구한 일. 그리고 지금은 낭트의 한 도서관에서 일제시대 주한프랑스 대사관에서 본국으로 보낸 문서 200상자를 찾아내서 독립운동사를 연구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녀가 병에 걸려서 한국의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사정은 정말 이해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잖아요."

직지 세미나 차, 우리나라에 들른 박병선 박사는 국가의 외면을 받고, 그래도 착한 우리 국민들의 도움으로 모금한 병원비 1억원으로 병은 고치시게 된다.

 

다시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로 와서.

그녀는 프랑스의 법 때문에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화연대에서 무조건 와서 시위하고 소송을 거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애국하는 일로 비칠 지 모르지만, 정작 반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외교적, 문화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것"임을 주장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부가 결정한 임대는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게 "우리 것"이 아니라는데, 항상 말씀하신다.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도 못 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냐. 빌려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반환의 절차는.

 

소유권 인정 후 반환 협상이다.

지금처럼, 소유권 포기, 임대...실효적 소유... 반환....이런 게 아니란 거다.

 

나는 박사님을 뵐 때마다 '보수'가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단호하게 내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 그런 열정. 자신이 평생을 지켜온 것을 끝내 지키는 꼿꼿함.

그런데 정작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 것을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

아무리 실용이라도 우리의 것을 지키겠다는 것에는 다른 어떤 것도 타협할 수 없다.

그건 엄연함 사실이니까.

 

문화연대도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문화라는데, 정말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싶다면, 문화적으로, 학술적으로 접근을 해서. 보다 세련되게 주장하고 반환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제 본인들도 시위하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박병선 박사님을 만나서 함께 작전을 짜고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

이제 쇼는 됐다.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

이제 실리를 챙겨야 한다.

 

이번 외규장각 도서 임대는 누가 잘하고 누가 잘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이 다를 뿐이다.

모두 모여서 생각의 차이를 좁히고 함께 연대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iron
eiron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마라 -호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