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워비곤 호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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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8.03.14. 오후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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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풍자 작가이자 방송인 개리슨 케일러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버라이어티 쇼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에서 ‘워비곤 호수’라는 가상 마을을 설정한다. 1974년부터 이어져온 이 프로그램에서 케일러는 언제나 ‘워비곤 호수’ 마을의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한다. “레이크 워비곤에서 온 소식입니다. 시간도 잊어버린 마을, 세월도 바꾸지 못한 마을, 여자들은 모두 강인하고, 남자들은 한결같이 잘 생겼으며, 아이들은 모두 평균 이상인 이곳….”

여기서 ‘아이들이 모두 평균 이상인 곳’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다. 통계적으로 불가능하니 논리적 오류다. 2006년 타계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제작할 정도로 인기 있는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은 ‘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들보다 재능이나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주 소아과 의사이자 교육학자인 존 캐널 박사는 워비곤 호수 효과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50개 주 정부가 하나같이 자신들의 학생 평균 성적이 전국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캐널 박사는 모든 주가 전체 평균보다 높은 것은 통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가 쓴 ‘사회심리학’도 워비곤 호수 효과의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 사례들을 소개한다. 기업 임원들 중 90%가 자신의 성과를 평균 이상이라고 자평하는 것이 좋은 예다. 해리 베키스의 저서 ‘보이지 않는 것을 팔아라’에서도 80%의 직장인이 스스로를 평균 이상이라고 여긴다. 부모들이 흔히 ‘우리 아이도 혹시 수재가 아닐까’하고 착각하는 것도 워비곤 호수 효과에 속한다.

어제 잡코리아가 직장인 지식포털 비즈몬과 함께 20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서도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수한 인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70%에 육박했다. 이들 가운데 77.4%가 능력에 비해 연봉 수준이 낮다고 주장한다. 워비곤 호수 효과를 그대로 보는 듯하다.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의 낙천자들이 한결같이 자신은 경쟁자들보다 나은 데도 탈락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니 자기 과신의 워비곤 호수 효과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 김학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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