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MBC, SBS 등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부 비판적인 글을 올린 이용자들의 신상정보가 법원의 영장도 없이 관행적으로 경찰에 넘겨진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의 언론 자유와 표현 자유를 존중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앞장서야 할 언론사들이 되레 경찰의 무차별적인 인터넷 검열과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참여연대가 지난 15일 MBC와 SBS, 네이버 등이 영장도 없이 경찰이 요구한 사용자의 개인 신상정보를 제공한 데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헌법소원을 내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손해배상 청구자의 한 사람인 최정학씨는 지난 3월28일부터 4월26일까지 MBC와 SBS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천안함과 BBK 의혹,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 논란 등과 관련해 8건의 의견글을 올렸다가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최씨는 지난 5월 중순께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소속 수사관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출두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수사 받으라는 요청을 받고, 그달 19일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최씨는 경찰이 직접 집으로까지 찾아온 것이 의아해 방송사측에 확인한 결과 이들이 경찰요구로 신상정보(전화번호와 주소)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씨는 MBC와 SBS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iMBC와 SBS 콘텐츠 허브 관계자로부터 “경찰이 요구하면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언제, 어떻게, 누가 얼마나 신상정보를 제공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실제 MBC와 SBS는 물론 KBS 시청자 상담실 등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경찰이 공문으로 요청하면 게시글을 올린 사용자의 신상정보를 관행적으로 제공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MBC 인터넷 사이트를 운용하고 있는 iMBC 관계자는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공문을 받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제공하고 있다”며 “수사 요청은 한 건이 아니고 여러 건”이라고 밝혔다. SBS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인 SBS 콘텐츠 허브 정준태 미디어운영팀장도 “최씨의 경우 경기경찰청장의 직인이 찍힌 공문이 접수돼 신상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3항은 법원의 영장이 없더라도 수사기관 장 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에 응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는 ‘통신비밀 보장’을 위한 조항으로 3항의 규정은 예외적으로 수사기관 등의 요청이 있으면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의 조항이다.
이 때문에 법의 취지로 볼 때나, 언론기관으로 시민의 표현 자유와 프라이버시 존중을 우선시해야 할 방송사들이 별다른 내부 규준도 없이 수사기관의 요청에 관행적으로 순응해 온 것은 언론기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반언론적 행태라는 지적을 사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언론사가 취재원 신원 보호는 중시하면서 시민들의 신상 정보 보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하고 “취재원이 신원을 밝히지 않으려 하는 이유와 누리꾼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려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취재원의 신원도 이런 식으로 수사기관에 넘어간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언론사에 정보를 제공하려 할 것이며, 자유롭게 권력을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MBC와 SBS 본사는 “홈페이지 운영은 계열사에서 전적으로 맡고 있으며 본사가 이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최씨는 지난 15일 경기경찰청장과 국가를 상대로 전기통신사업법 54조3항이 ‘영장주의’ ‘통신 비밀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에 반하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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