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천안함 침몰 사고] "해군은 손 못쓰고 해경이 구조".. 해군 발표와 다른 해경의 최초 상황 증언

2010. 3. 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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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천안함 침몰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해군 및 국방부 설명과 직접 구조에 나섰던 해양경찰 및 목격자의 진술이 서로 달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크게 세 부분이다. 사고 직후 현장에 급파된 해군 소속 함정들이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에 대해 해군과 해경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복수의 목격자들은 해경이 도착할 때까지 해군은 구조에 나서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고만 있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천안함이 사고 직후 두 동강 나 뒷부분부터 가라앉았는가 여부다. '쾅' 소리 직후 함정이 두 동강 나 배 후미가 곧바로 가라앉았다는 해군 설명과 달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침몰된 상태는 아니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천안함 함장과 부장(부함장)이 사고 현장에서 왜 빨리 자리를 떴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일부 목격자들은 해군 참수리정이 해경 함정에 의해 구조된 함장과 부장을 태우고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대한 구조하려 노력했다" vs "해경 도착할 때까지 서치라이트만 비췄다"=사고 직후부터 해군은 "사고 당시 최선을 다해 모든 병사를 구조하려 애썼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생존이 확인된 사람부터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27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실종자 가족 상대 브리핑에서 천안함 최원일 함장은 "로프 등을 이용해 모든 병사들을 구조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먼저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실종 병사를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에 참여한 해경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26일 오후 9시30분쯤 해경 상황실에 '백령도 근처에 침몰 사건이 있으니 즉시 구조대를 출동시켜 달라'는 해군 신고가 들어왔다. 대청도 하단에 대기하고 있던 해경 구조정은 신고 직후 현장으로 출동했다.

해경 관계자는 28일 "대청도 부근에서 대기하던 해경 소속 함정이 26일 오후 9시30분쯤 해군의 신고를 받고 30노트(시속 55.56㎞)로 내달려 약 50분 만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해경 구조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오후 10시20분쯤 사고 해역에는 이미 해군 소속 함정 4척이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4척 중 어떤 함정도 천안함에 다가가지 않은 채 멀찌감치 서 있었을 뿐이었다고 해경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해군 소속 함정들은 구조 시도를 하지 않은 채 서치라이트를 켜놓고 해경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해군과 합참은 이러한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해군 관계자는 "사고 직후인 오후 9시41분 백령도에 있는 고속정 4척에 출동지시를 내렸고 9시58분 사고지점에 도착했다. 이어 오후 10시20분 잠수함 초계용 링스헬기 1대가 이륙, 한 시간 뒤에 도착해 수색에 나섰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사고 당시 파고가 3m로 매우 높아 다른 함정들은 초계함에 계류(배와 배를 가까이 붙이는 것)해 구조 활동을 할 수 없었다"며 "당시 출동했던 해군 소속 함정에는 구조용 고무보트가 없었기 때문에 해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군에서 복무했던 예비역 병장 최모(30)씨는 "함정에 고무보트가 없는 경우는 종종 있다"면서도 "탈출용 튜브나 비상용 구조 장비 등 다른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구조 시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경이 오기 전 천안함에 있던 해군 2명을 구조한 것은 다름 아닌 어업지도선 선원들이었다. 해군이 의지만 있었다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조 노력을 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천안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의 생사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불만 밝혀 놓은 채 50여분 동안 해경 구조정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해군이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쾅' 소리에 두 동강, 후미는 바로 가라앉았다" vs "해경 구조 진행될 동안 서서히 가라앉았다"=합참은 27일 "26일 오후 9시30분쯤 천안함의 선미 부분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발생한 뒤 약 20분 만에 천안함 전 구역의 60%가 침수됐다"고 밝혔다. 폭발이 있고 난 다음 20분 만에 함 전체의 60%가 물에 잠겼기 때문에 물에 떠서 이동하는 선박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이다.

합참의 이러한 발표는 당시 사고 함정에 승선해 있던 최 함장의 설명과 차이가 있다. 27일 최 함장은 "'쾅' 하는 소리가 난 후 갑판 위에 나갔을 때 배 후미는 이미 가라앉은 뒤였다. 순식간에 가라앉아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 함장은 심지어 "'쾅' 소리가 난 지 1초 만에 배 후미가 가라앉았다"고 했다가 실종자 가족들이 "말이 되느냐"고 격하게 반발하자 "그만큼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구조에 나섰던 해경 및 목격자들이 전하는 내용과는 완전히 달랐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천안함은 뒷부분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채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고 기억했다. 구조를 위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천안함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거나 침몰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수면 아래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천안함이 물 위에 뜬 상태만 놓고 봤을 때 배가 두 동강 나 이미 침몰한 상태로 보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해경이 갑판 위에 있던 해군들을 구조하는 데 걸린 시간을 따져 보면 천안함이 사고 직후 가라앉았다는 해군의 주장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해경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뒤 어업지도선이 구조한 2명을 제외한 56명의 구조를 마무리 짓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였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신고를 받은 시점부터 구조하는 데 걸린 시간이 모두 3시간 정도 된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은 "배 뒷부분이 물에 잠긴 것은 맞지만 해군의 주장대로 곧바로 잠겼다기보다는 구조가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물에 가라앉은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당시 해경은 10인승 고무보트 한 대를 이용해 구조정과 천안함을 왔다갔다하며 천안함 앞쪽 갑판에 모여 있던 56명을 차례로 구조했다. 해경 관계자는 "리브(구조용 고무보트)는 10인승인데 구조 대상자만 타는 게 아니라 해경 소속 구조 요원들도 함께 타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6∼7명 정도씩만 구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무보트를 천안함에 가까이 붙인 뒤 구조할 병사를 태워 구조정으로 데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회에 15∼20분 정도다.

◇"바다에 병사 빠지는 등 급박하게 상황 돌아갔다" vs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원활한 구조가 진행됐다"=사고 당시 58명의 생존자 중 해경이 56명, 인근에 있던 어업지도선이 2명을 구조했다. 해군 측은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할 때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병사가 있는 등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설명을 되풀이했다. 합참 박성우 공보실장은 28일 브리핑에서 "56명을 전부 해경이 구했다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 "해경만 구한 것은 아니다"며 "나중에 말하겠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해경 및 일부 목격자들은 전반적으로 구조는 차분한 상태에서 원활히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생존자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든지 먼저 구조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등 천안함 안이 아수라장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2시간여에 걸친 구조 과정 중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지는 않았고 차분하게 구조가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구조에 참여한 해경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고 당시 천안함 갑판에 올라 있던 병사 중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사람은 약 3분의 1에 불과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상당히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비교적 차분한 상태에서 구조를 기다렸다는 게 목격자들의 전언이다.

천안함 갑판에 응급처치를 마친 부상자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진술도 당시 상황이 그리 급박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당시 갑판에는 머리에 피를 흘리는 사람과 팔과 다리가 각각 부러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머리를 다친 사람은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은 상태였고 팔과 다리를 다친 사람들은 부목을 대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점은 "사고 직후 배가 두 동강 나 침몰됐고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는 해군 측 주장과 모순된다.

◇함장, 부장 일찍 자리 떴는데…"상부보고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 vs "실종자 배 안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자리 떠난 것은 무책임"=천안함 최 함장은 27일 실종자 가족과의 만남 자리에서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모든 통신시설과 전기시설이 나가는 바람에 구조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최대한의 노력을 했으나 남은 46명을 구하지 못하고 나온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56명이 구조된 후 사고 현장을 빨리 떠난 사람이 최 함장과 천안함 부장이었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나왔다. 목격자에 따르면 최 함장과 부장을 포함해 56명의 해군이 해경 함정에 의해 구조된 뒤 해군 소속의 참수리함 1척이 현장에 도착해 최 함장과 부장을 태우고 현장을 떠났다. 이어 또 다른 참수리정이 사고 현장에 급파돼 해경 구조정에 남아 있던 54명의 해군을 태워 갔다는 것이다. 최 함장은 전날 실종자 가족과의 만남에서 "구조에 최선을 다했으나 혼자 살아남았다. 실종자 가족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으나 실종자를 함정 안에 남겨둔 채 현장을 떠났다는 점에서 실종자 가족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군 측은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 "해군 함정을 사고 현장에 급파한 이후 곧바로 구조작업을 시작했다"고 해명하면서도 어떤 구조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는 요구에는 입을 다물었다.

해군 관계자는 천안함 함장이 자리를 먼저 뜬 것을 인정하면서도 "함장이 침몰하는 배와 함께 가라앉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라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사고의 진상을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리를 뜬 것"이라고 해명했다.

평택=조국현 기자 jo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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