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비 안 받아도 되니 제발 밖으로 나오지 마"
[[오마이뉴스 김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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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희! 빨리 한 쪽에 자리 잡아!"
저상버스에 올라탄 친구와 나를 맨 처음 맞아준(?) 것은 운전기사의 신경질적인 반말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빠진 것보다 우리 때문에 승객들이 느낄 불편이 더 신경 쓰였다. 최대한 한쪽에 붙여서 전동휠체어를 주차시켰다.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옆에 있는 학생에게 건네주면서 차비 좀 대신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순간, 기사의 두 번째 반말이 날아 왔다.
"야, 너희한테는 차비 안 받아도 좋으니까 제발 좀 밖으로 나오지 마라."
버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승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고 친구와 나는 침울해졌다. 우리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하자 기사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버스를 인도 쪽으로 붙이고 리프트를 내렸다. 친구와 나는 서둘러 버스에서 빠져 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운전기사의 마지막 말이 우리의 등 뒤에 와 꽂혔다.
"나 저것들만 보면 정말 열 받아 미치겠어."
내내 참았지만 그 순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전동휠체어를 돌려 다시 버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친구가 내 앞을 막아서며 말렸다. 친구와 내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리프트는 올라갔고 저상버스는 유유히 멀어져갔다. 3년 전 여름, 비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장마철에 겪은 일이다.
'비장애인과 섞이는' 버스, 중증장애인에겐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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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가 광주시에 처음 운행되던 초창기에는 이런 일들을 경험한 중증장애인들이 많았다. 리프트를 내려 전동휠체어를 실어 올리는 데 시간이 약 3분 정도 걸린다. 그 시간이 기사나 승객들로서는 답답할 수 있다. 또, 중증장애인의 부자연스러운 몸짓이나 말이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데서 모욕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다.
중증장애인이 버스를 탄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동안 저상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보고 느낀 점도 많았다.
이른 아침, 단정한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장보기용 수레에 옥수수를 가득 싣고 재래시장에서 내리는 중년 아주머니의 뒷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을, 귀에는 엠피스리 이어폰을 꽂고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대학생의 차림에서 젊음의 신선함을 보았다. 그리고 나도 희망이든, 고단함이든, 신선함이든,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하나 들고 그들 속에 섞이고 싶어졌다.
차가운 시선과 비정한 말로 상처 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그럴 때는 마치 "야, 너희는 너희 세계에서 살아. 우리 세계로 넘어오면 죽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저상버스를 이용하게 되면 저상버스는 순식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이는 공간이 된다.
비록 대화가 오고가지 않는다 해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보고 느끼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비장애인들도 나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을 보면서 또 다른 세상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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