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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핵 르네상스’ 맞은 독일

염광희 |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

일본 후쿠시마 핵재앙이 시작된 지 근 한 달이 지났다. 원자로 폭발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처럼 보이지만, 방사능 공포는 일본뿐 아니라 한반도에도 상륙했다. 국민들은 불안해하지만 정부와 원자력기술자는 인체에 영향이 없다는, 미덥지 않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반면 일본으로부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독일에서는 마치 자국에서 똑같은 재앙이라도 벌어진 양 연일 심각한 어조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기고]‘반핵 르네상스’ 맞은 독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공포와 때를 같이해 독일은 말 그대로 ‘반핵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지난 3월12일 약 6만명의 시위대가 네카베스트하임 원자력발전소의 즉각적인 폐쇄를 요구하며 슈투트가르트에 모여 45㎞의 인간띠를 시작으로, 이틀 뒤인 14일 전국적으로 11만명이 참여한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3월26일에는 독일 반핵운동 사상 최대 인파인 25만명이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에 모여 핵에너지 추방을 외쳤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태 직후 노후한 7기의 핵발전소 가동중지를 선언했지만, 독일 시민들은 가동 중인 나머지 10기도 당장 폐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반핵 열기는 선거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3월27일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라인란트-팔츠 주에서 지방 선거가 있었다. 슈투트가르트와 프라이부르크를 포함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은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 텃밭으로 정평이 나있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이다. 지난 58년간 줄곧 기민당 출신이 주 총리를 역임한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기민당은 녹색당과 사민당 연합에 패배했다. 더불어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녹색당 출신 주 총리 배출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 언론의 표현대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공영방송 ARD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경제나 사회정의, 교육 정책에 앞서 환경·에너지 정책을 가장 우선시하고 투표에 참여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4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는 녹색당의 집권으로 즉각적인 원전 폐쇄가 이뤄질 것으로 벌써부터 점쳐지고 있다.

시민들의 거센 반핵운동에 움찔한 것일까. 지난해 원자력발전소 수명연장을 단행했던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후 성직자, 대학교수를 비롯한 학계, 관련업계 대표와 원로 정치인을 참여시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원자력발전소는 기술적인 여건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동의가 필요한 사회적 요소이기 때문에 이 위원회를 추가 설치한다고 독일정부는 밝히고 있다. 위원회는 8주간의 활동을 거쳐 5월 말 그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독일은 25년 전 체르노빌의 공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뮌헨환경연구소’와 ‘핵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물리학회(IPPNW)’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 후 9개월이 지난 후부터 다운증후군으로 알려진 유전자 손상을 입은 신생아의 출산이 급증했는데, 사고 현장으로부터 1160㎞ 떨어진 베를린에서도 그 증가세가 확연했다는 것이다. 독일 남부에서는 체르노빌로부터 날아온 방사성 요오드로 인한 갑상샘암이 발병했으며, 독일 전역에 걸쳐 이 사고의 영향으로 약 300명의 사산이 보고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공교롭게도 독일과 체르노빌의 거리는 한국과 후쿠시마의 1100㎞와 같다. 독일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통해 원자력의 위험성을 깨닫고 원자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로의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 교훈을 얻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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