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투자전략의 핵심은 속된 말로 '치고 빠지기'이다. 지금 론스타는 이 전략의 마지막 단계, 지금껏 공들여 만들어 낸 수익을 고스란히 챙겨들고 조용히 한국을 탈출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론스타의 탈출 시나리오의 상대 배역은 하나금융이 되는 셈이다.
론스타 배당액, '상식적'인가?
먼저 하나금융과 론스타가 지난 해 11월에 체결한 주식매매계약을 정리해 보자. 이 계약에서 중요한 부분은 주식매매가격과 세금에 대한 것들이다.
가격을 보자. 외환은행지분의 51.02%를 보유한 론스타는 보유지분을 주당 1만4250원으로 하나금융에 팔기로 했다. 이에 하나금융은 2010년 9월 말 주식시가인 1만2750원에 10% 정도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추가하여 형성된 가격이라고 해명했다.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 발생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은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해 12월 경 외환은행 노조는 2010년의 결산배당으로 주당 850원을 확정보장해 준다는 조건이 추가된 것을 파악했다. 문제를 제기하자 하나금융도 12월에 이를 정정공시했다. 이를 두고 왜 계약의 내용을 정확하게 공시하지 않았는가 하는 논란이 불거졌다.
하나금융은 이 850원의 확정보장 결산배당이 론스타가 더 많은 배당을 가져갈 것에 대한 제한장치라고 주장하였다. 외환노조에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주당 1만4250원에 추가하여 850원을 더 받는 것을 보장하는 보장장치라고 주장했다. 상식적인 수준의 배당보다 낮게 배당이 설정된다면 제한장치가 될 것이고 그것보다 높으면 보장장치가 될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의 배당'이란 배당의 기초가 되는 당기순이익을 고려해 대략 파악될 수 있다. 외환은행의 순이익을 지난 해보다 조금 높은 1조 원으로 추정해본다면, 이미 중간배당으로 나간 주당 235원과 이번의 확정보장 결산배당인 850원을 합친 총 배당액은 700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며, 이는 당기순이익의 70%에 해당한다. 상식적인 수준을 초과하는 액수다. 말하자면 '고배당'과 '국부유출'에 무게를 둔 외환노조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지난해 11월 25일 영국 런던에서 외환은행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식을 마친뒤 악수를 나누는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과 론스타 존 그레이컨 회장. ⓒ연합뉴스 |
론스타 '먹튀 논란' 속 거꾸로 가는 하나금용
다음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금문제를 보자.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한데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과 벨기에 사이에 체결된 과세협정에 따라 론스타 본사가 벨기에에서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가 아니라 실체적인 영업행위를 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실체적인 영업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게 된다면 론스타는 한국에서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사라진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국세청과 론스타 간의 과세공방의 결과가 세금납부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고정사업장이 존재하는가, 고정사업장이 없더라도 실체적인 영업행위를 하였는가, 고정사업장도 없고 실체적 영업행위도 없었는가에 따라 과세액이 달라지고 하나은행의 원천징수의무 여부도 달라진다.
그런데 문제는 국세청의 노력에 의해 고정사업장 여부를 입증할 경우에조차 세금을 받아낼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사모펀드는 쉽게 청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자산을 가압류하지 않는다면 국세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론스타로부터 세금을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더 확실한 방법은 소득세를 미리 내고 사후적으로 환급을 받는 일반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즉 하나금융에서 예상되는 세금부분을 뺀 나머지 대금을 론스타에게 지급하고, 론스타는 국세청과의 소송 결과에 따라 차액을 환급받는 방법이다. 세금과 관련된 법정공방이 3~5년 정도 오랜 기간 진행되므로 일단 원천징수하지 않은 모든 대금을 론스타에게 지급한 뒤에 이를 받아낼 가능성은 그 만큼 줄어들 수 있다.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하나금융이 원천징수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론스타의 자산을 가압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금융은 대금을 모두 론스타에게 지급하고 과세문제와 관련된 문제에서 론스타와 협력할 것을 약속해 버린 상태다.
이 두 쟁점을 놓고 본다면, 큰 변수없이 상황이 진행될 경우 론스타의 최대 목표인 '무사히 한국 탈출하기'는 어느 정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약 자체는 론스타에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라고 판단된다. 계약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인데, 론스타가 이익을 보면 하나금융은 그만큼 손해가 될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금융은 여기서 어떤 이익을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국내 금융상황과 하나금융의 상황이 동시에 작동한다.
'무혈 한국탈출' 막으려면, 대주주 적격성 문제 다시 꺼내야
올해 금융권 신년사에서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리는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위기가 진정되는 단계에서 금융기관들의 대형화와 겸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게 자명해지고 있다. 그동안 부유한 개인을 상대로 영업에 주력한 하나은행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문제는 하나은행의 경영성과가 점점 하락해왔다는 점이다. 하나은행의 총자산대비 순이익(ROA)는 2006년 1.06%에서 2009년 0.19%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한편 외환은행은 같은 기간 1.52%에서 0.88%로 점진적으로 하락하였다. 은행산업의 경쟁상황과 시장환경에 따라 은행들의 ROA는 전반적으로 하락하였지만 하나은행의 경우는 다소 충격적이다.
여기에는 하나은행의 주사업영역인 프라이빗 뱅킹 쪽의 치열한 경쟁상황과 이를 제외한 분야에서 뚜렷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하나은행은 점점 약화되는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공격적인 전략을 취한 것이고, 불리한 조건으로 주식매매계약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됐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합병이후 일시적으로는 외환은행의 수익이 하나금융에게 활력을 제공하겠지만 수익이 외환에서 하나금융으로 이전되는 경향이 지속될 경우 외환은행의 장점을 더욱 발전시킬 재원이 부족해질 수 있다. 또한 급박하게 진행될 인수과정에서의 무리한 자금조달방식이 재무적 위험요소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고 단기적으로 향후 몇 년간 지속적으로 유지될 높은 불확실성은 하나금융의 안정성을 급격히 약화시킬 촉매역활을 할 수도 있다.
부자들의 자산으로 형성된 사모펀드가 단기 고수익을 얻기 위한 전략을 취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리고 개별 금융기관이 다소 무모해 보이는 성장전략을 취해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도 어찌 보면 탓할 일이 아닐 수 있다. 개별 경제행위자들의 행동이 모여서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더라도 개별 경제행위자들에게 자제를 요청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합병을 허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과세할 것인가 과세하지 않을 것인가?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금융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에는 어떠한 정치적 판단도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해묵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해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론스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들의 '무혈 한국탈출'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론스타의 대주주 부적격성이 그들를 압박하여 보유주식을 강제매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금융기관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 사모펀드의 재등장은 좋지 않다. 하나은행과 론스타의 쌍방 간 이해의 결과로 만들어진 외환은행 주식매매계약은 그 자금조달과정에서 사모펀드가 핵심적인 전략적 투자자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합병 은행의 공멸을 초래하고 국민경제에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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