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가 장난삼아 그린 벽낙서 `시리아 핏빛시위’ 도화선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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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1.03.24. 오후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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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작은 사건이 역사의 커다란 수레바퀴를 움직인 사례는 숱하다. 1989년 동유럽의 사회주의 몰락에 비견되는 현재진행형의 ‘아랍의 봄’도, 지난해 12월 튀니지에서 26살 청년 노점상의 분신에서 시작됐다. 1963년 국가 비상사태 선포 이후 부자 세습 독재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 민주화 시위의 불을 댕긴 건 어처구니없게도 벽낙서였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

이달 중순 시리아 남부 다르아시 인근 한 마을에서 17살이 채 안 된 학생 15명은 학교 담장과 곡물창고에 ‘그라피티’(공공장소에 하는 낙서)를 하며 놀았다. “사람들은 정권이 몰락하길 원해.” 아이들의 장난 섞인 낙서는 독재 정권의 눈엔 정치적인 ‘반독재 구호’였다. 아랍에서 번지고 있는 민주화 물결에 잔뜩 긴장한 비밀경찰은 아이들을 곧바로 연행했다. 그러고는 동네 순찰을 늘렸다. 검문을 강화하고, 페인트나 스프레이통을 사는 사람들의 신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성난 부모와 주민들은 길거리에 나와 “아이들을 돌려달라”고 외쳤다. 여성 저명인사인 디아나 자와브라(시민운동가)와 아이샤 아바제이드(내과의사)가 거들면서 시위는 한층 탄력을 받았다. 보안 당국은 이들마저 체포했다고 <글로브 앤드 메일>이 전했다.

지난 금요일 시위는 빠르게 비상사태법 철폐와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 일가의 부정부패 청산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보안군이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5명이 숨졌다. 아사드는 희생자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고, 다르아주 지사를 파면했다. 뒤늦게 학생 15명도 풀어줬다.

하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민주화 요구는 더욱 커졌다. 23일 다르아에선 오마르 모스크에서 시위를 이어가던 시민들을 향해 보안군이 무차별 난사해 최소 25명이 숨졌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그러나 한 인권단체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학살’이 빚어진 다음날 다르아에선 희생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인 2만여명의 시위대가 ‘정권 타도’를 외쳤다. 시민들은 25일을 ‘존엄한 금요일’로 정하고,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예고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평화로운 시위를 향한 폭력을 비난했고, 학살에 대한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미국과 영국도 시리아 정부를 비난했다. 낙서에서 비롯된 안팎의 ‘도전’이 48년 철권통치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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