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후원금’ 성환고 김동근 해직교사의 ‘마지막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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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이유로 해직된 김동근 교사(왼쪽)가 22일 충남 천안시 성환고등학교에서 마지막 조회 후 동료 교사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ㆍ“가난했던 어린시절 잊을 수 없어 무상교육 내건 정당 기꺼이 후원”

22일 오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송덕리 성환고교 강당.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이 날짜로 해임된 김동근 교사(49·영어)가 ‘마지막 조회’를 하고 있었다.

“어린시절 수업료를 내지 못해 여러 번 교무실에 불려 다녔습니다. 차비 25원이 없어 천안에서 집(성거읍 소우리)까지 수십㎞를 걸어다녔습니다.”

“30여년이 흘렀어도 어릴 적 그 아픈 기억을 절대 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무상교육을 정책으로 내건 정당이 있었습니다. 기꺼이 그 정당에 후원하게 됐습니다. 학생들이 저처럼 수업료, 급식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는 ‘해임’이란 말을 할 때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음성꽃동네, 기아구호단체, 교육관련 학부모회, 장애인단체 등에도 후원을 했습니다. 만약 이런 후원이 부끄러운 일이었다면…. 혹여 누구를 해치는 일이었다면…. 전 여러분 몰래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의연함을 잃지 않고 제자들을 위해 달디단 한마디를 남겼다.

“힘들더라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마세요. 돕고 싶은 마음을 꼭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세요.”

30분간의 ‘마지막 조회’가 마무리되고, 연단에서 내려오는 선생님을 보며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이 흐느꼈다.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있던 1학년6반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 게시판엔 ‘최강 꽃미남 동근쌤과 아이들 6반’이라는 글이 있었다.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해서 별명이 ‘정보석’인 선생님은 제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자. 마지막이다. 재연이, 혜란이, 다혜, 소희, 은혜, 수연, 미혜…. (학기도) 다 마치지 못하고…. 여러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했어야 하는데…. 너무 가슴 아프네.”

그리곤 제자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을 건넸다.

“엊그제 너희들이 나에게 종이 장미꽃 262송이를 접어 주었지. 함께한 262일을 꼭 기억하겠다고…. 나도 너희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장미꽃을 준비했어.”

제자들은 선생님과의 이별을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영어수업 정말 재미있었는데… 나쁜 일을 하신 것도 아닌데 왜 떠나야만 하는지….”(이슬비양)

“그동안 선생님한테 받기만 하고 해 드린 게 없어 너무 서운해요. 꼭 돌아오세요.”(정희남군)

“아무 잘못도 없는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야 하나요.”(박경현군)

떠나야 할 시간이 되자 반장(박경현군)이 일어났다.

“자, 우리 마지막으로 ‘차렷, 경례’ 하는 인사 말고, ‘우리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대신하자.”

제자들이 외쳤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나도 너희들 사랑한다.”

제자들은 2층 창문에서 선생님이 교문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사랑합니다”를 소리쳤다.

<정혁수 기자 overa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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