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운 없는 대통령, 그래도 사진 안 뗀다"

2011. 2. 20. 20: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

19일 저녁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욕쟁이 할머니 포장마차'에 갔다.

강남구청 인근의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이 포장마차에 특별한 게 있다면 주인 강종순 할머니(71)와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실제로는 동갑이지만, 강씨는 2007년 11월 이 대통령(당시 후보)에게 국밥 한 그릇을 퍼주면서 "우리는 묵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이눔아.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라고 시원하게 욕설을 퍼붓는 대선 CF로 유명하다.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TV 광고에 출연했던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 씨.

ⓒ 안홍기

금요일에도 포장마차 '썰렁'..."적자 본 지 2년"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명박을 좋아했다"는 강씨는 이 후보가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자로 남았다.

광화문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7월 < 중앙선데이 > 인터뷰에서는 "저 지랄들을 허니 뭔 장사가 되겠어?"라고 시위대를 비난하고, 세종시 수정안 논쟁이 한창이던 2009년 12월에는 "(행정기능은) 한 곳으로 합치는 게 좋다"며 대통령을 편들었다(공교롭게도 강씨의 고향은 세종시가 들어서는 충청남도 연기군이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도 이에 화답하듯 대선 2주년이었던 2009년 12월12일 강씨의 포장마차를 깜짝 방문해 100만 원 어치의 매상을 올려줬다.

그러나 1년의 세월이 또 흘렀지만 강씨의 형편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포장마차 테이블 14개 중 손님들이 들어찬 곳은 불과 3~4개.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치고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이다.

강씨에게 "원래 이렇게 손님이 없냐"고 묻자 "장사가 참 어렵다. 일주일에 3번은 하루 매상이 10만 원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적자 본 지가 2년 가까이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 건물주에게 월세도 주셔야 하죠?

"그럼! 그래도 내가 이걸 내놓지도 못하고 다른 가게를 얻을 돈도 없어. 이곳은 월 150만 원인데, 1층에 얻으려면 월 350만 원은 줘야혀. 내가 지금 월세가 7개월 밀렸는데, 어디 나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나가지…."

- 그 전에는 이곳에 손님 많았다면서요?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을 때니까 장사가 잘 됐지. 그때는 외국에서 빚 내서 돈을 풀어제꼈지만 지금은 나라 창고가 비었으니… 쓸 돈이 있어야 대통령이 풀지. 구제역도 그래. 짐승들이 저러는 일도 없었는데…."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외국에서 큰 돈을 빌린 적이 없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지도 않았다. 최근 국가 재정이 어려워진 것도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무리하게 경기를 띄우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은데, 강씨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바닥에 대통령 사진 떨군 청년들과 한 차례 실랑이도

이렇게 얘기를 이어가던 강씨의 심기를 건드린 사건이 때마침 일어났다.

술을 먹던 청년 셋이 벽에 걸린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을 바닥으로 떨군 것이다. 고의적이었는지 실수였는지 이들의 얼굴에는 멋쩍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TV 광고에 출연했던 강종순씨가 운영하는 실내 포장마차 벽에는 대선 당시 이 후보와 함께 찍은 광고 사진과 지난 2009년 12월 12일 이 대통령이 깜짝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 걸려 있다.

ⓒ 안홍기

할머니

: "그건 왜 건드려서 지×을 해? 이 ×놈의 ××들! 일어나서 집어넣어, 이 ××야!"

청년들

: "아이구, 죄송해요. 이게 잘 안 걸리네요."

할머니

: "×놈 ××들아, 술 그만 쳐먹어! 몇 병 쳐먹었어?"

청년들

: "5병이요."

할머니

: "5병? 아이구 지×하고 있네, 1병 반씩 쳐먹고 사진을 떨어뜨리고 지×이여…."

그러나 이런 시비가 생각보다 잦다고 한다.

"(대통령과 찍은) 사진 붙여놓은 지 2년 됐는데, 어느 날인가 40대 손님들이 와서 '할머니, 저 사진 붙여놓으면 젊은 애들은 안 와요'라고 하는 거야. 또 다른 애들이 와서 '저 사진 떼라'고 했지. 하지만 내가 막 야단쳤어. 내버려둬! 저 사진 붙였다고 올 놈이 안 오겠어? 내 맘대로 할 테니까."

그러면서 강씨는 "김대중·노무현이 10년 동안 (집권해서) 한 일이 뭐가 있어?"라며 "우리나라에 간첩이 득실거리고 이북에 알지도 못하는 숫자의 돈을 막 퍼다줘서 이렇게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진보정권의 대북 유화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한나라당을 '묻지마 지지'하는 노년층의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셈이다.

그런 강씨도 이명박 대통령에 기대를 걸었던 민심이 그가 집권하자마자 싸늘하게 돌아선 현실은 인정했다.

- 예전에 이 대통령을 좋아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의 마음이 많이 돌아선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요?

"그러게 말이여. 좋아하던 사람들이 왜 지금은 싫어할까?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 대통령 선거 때 약속을 너무 많이 한 게 아닐까요? 이를테면 매년 7%씩 경제 성장시킨다는 747 공약 같은 거….

"그 양반 마음이야 그리 하고 싶겠지만,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데 어떻게 혀? 국민들이 단합하고 솔선수범하고 노력해야 경제가 살아나지. 대통령 혼자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거여. 나는 그런 것까지 대통령이 잘 못 한다고 보진 않아."

"마음 여린 대통령, 이런저런 약속 해주다가 곤욕"

- 그런 위기를 당연히 극복하고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표를 준 거 아닌가요? 대통령 본인도 '자신있다'고 큰 소리 쳤고….

"아니지, 아니지. 기대한 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우리나라 형편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더 큰 걸 바라서야 되나? 또 그런 공약 내세웠다고 해서 그런 것 물고 늘어지면 안돼. 누가 될지 몰라도 다음 대통령도 비슷한 공약을 할 것이고, 그게 100% 이행되나? 대통령이 맘이 여린 사람이라서 (주변에서) 이런저런 약속하라고 하면 그리 하겠다고 했다고 이렇게 곤욕을 치르는 거여."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TV 광고에 출연했던 강종순씨.

ⓒ 안홍기

- 충청권에 과학벨트 준다고 한 약속도 그렇게 이해해야 하나요? "세종시를 하게 됐으니까 과학벨트는 못 주는 거지. 나라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충청도에만 다해줄 수 있나? 나도 충청도 사람지만 충청도 사람들 너무하는 거야."

이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인지 강씨는 TV 저녁뉴스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날의 메인뉴스로 '정권 실세'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이 건설현장 식당(함바집)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는 장면이 나왔다.

"청장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믿고 일을 시켰는데 일을 똑바로 해야 대통령이 욕을 안 먹지."

- 그러니까 친한 사람만 찾지말고 두루 좋은 사람 뽑아서 일 시켜야죠.

"너도 대통령되면 마찬가지 아니여? 자기랑 친한 사람 뽑는 게 인간 심리지. 김대중·노무현 때는 비리로 잡혀가는 사람 없었나?"

- 누가 대통령을 해도 측근 비리 없앨 수 없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지, 그렇지. 내가 누굴 믿고 일 시켜도 그 사람 속은 모르잖아. 돈을 먹지 말라고 해도 돈 욕심이 나는 거지."

이런 강씨도 개헌 문제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생각을 달리 했다. 강씨는 "그런 건 생각 안 해봤는데 개헌보다는 민생이 중요하다"고 말을 흐렸다.

"대통령 사진은 가보... 죽을 때까지 갖고간다"

강씨의 이야기는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으로 이어졌다.

"하여튼 대통령이 참 안됐어. 노력한 만큼 대우를 못받고 있으니… 뭘 해보려고 해도 무슨 장애가 이리도 많은지. 가축들은 왜 이리 많이 죽고 눈은 또 이리 쏟아지는지. 참으로 운이 없는 양반이여. 대통령에게 운이란 것도 무시할 순 없는데 모든 재앙이 저렇게 따라 붙으니."

- 대통령의 어떤 면이 그리도 마음에 드나요?

"그 양반 외모는 날카롭게 생겼는데 마음이 여려. 누구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오게 생겼다'고 하지만 마음은 안 그렇다니까. 가락시장에 가서도 노점상 할머니에게 목도리 풀어주고…, 없는 사람들 정말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느꼈어."

가게를 나서면서 마지막 질문을 던져도 강씨의 생각은 요지부동이었다.

- 대통령 사진은 가게 문 닫을 때까지 계속 걸려있겠네요?

"나 죽을 때까지 갖고 갈 거야. 저게 가보여."

- 장사 안 되니 떼자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요?

"안 떼! 지들이 달아줬어?"

강씨는 "혹시라도 '대통령이 경제 못해서 욕쟁이 할머니 가게 문 닫았다'고 기사 쓰는 놈 있으면 내가 가만 안 둘겨, 내 운이 없어서 장사 안되는 거지, 그 사람 잘못이냐?"고 대통령을 끝까지 감쌌다.

* 클릭 한 번으로 당신도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011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