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인화법 날치기 통과’ 반발, 교수들 천막농성 나서

목정민·이서화 기자

“정부 눈치보기 심해져… 대학 자율성 훼손 뻔해”

기초학문 지원 감소도 우려… 학생·교직원들도 농성 동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사흘째 맹위를 떨친 26일 오전 서울대 행정관 앞. 농경제사회학부 최영찬 교수가 농성장인 천막을 찾았을 때는 전날 사다놓은 귤이 모두 꽝꽝 얼어 있었다. 오렌지주스 등의 음료수 페트병도 얼어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b>혹한에…</b> 서울대 최갑수 서양사학과 교수(왼쪽)와 최영찬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26일 서울대 법인화법 폐기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혹한에… 서울대 최갑수 서양사학과 교수(왼쪽)와 최영찬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26일 서울대 법인화법 폐기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스티로폼을 바닥에 깔고 전기장판까지 가져왔지만 바닥은 차디찼다. 내복을 겹겹이 껴입고 두꺼운 파카까지 덧입었어도 한기는 여전했다. 2평 남짓한 천막은 강추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말을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침낭으로 몸을 감싼 최영찬 교수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법인화 저지를 위해 버텨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천막에는 ‘근조 국립서울대’ ‘근조 민주주의’라는 검은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서울대 법인화법의 폐기를 촉구하며 지난 20일 시작된 천막농성이 26일로 일주일째를 맞았다. 서울대 교수들이 천막농성에 나선 것은 2005년 미대 김민수 교수의 복직투쟁 이후 5년 만이다. 당시엔 교수 한 명의 투쟁이었다. 교직원, 총학생회, 교수가 연대해서 천막농성을 벌이는 것은 개교 이후 처음이다.

교수와 학생들이 밤샘농성을 하다가 한파경보가 내려진 지난 24일부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교수들이 나와 농성을 하고 있다. 최영찬 교수와 최갑수 서양사학과 교수(서울대법인화반대 공동대책위원장)는 성탄 연휴를 반납한 채 천막 지키기를 자원했다. 서너 명의 교수들도 천막에 들러 격려했다.

법인화는 ‘민영화’의 전 단계이며 결국 문·사·철 등 비인기학과에 대한 재정 지원이 줄어들어 대학이 담당해야 할 기초학문 연구가 소홀해질 것이라는 게 공동대책위의 판단이다. 이들은 자율을 명분으로 대학이 재정을 책임지라고 요구하면 등록금도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최영찬 교수는 “서울대 법인화법에 따르면, 총장을 선출하는 이사회에 교육과학기술부·기획재정부 차관이 당연직으로 포함된다”며 “자율성이 강화되기는커녕 ‘정부 눈치보기’가 훨씬 심해질 것이 뻔하고, 결국은 연구와 교육의 자율성도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될 경우 대학의 자율성과 지식인의 주체성은 망가질 위험이 크다”고도 했다.

서울대 법인화법은 관련 상임위인 교육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날치기 통과됐다. 이 때문에 서울대 교수들은 정부와 한나라당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당사자인 서울대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서울대 법인화법은 4대강 사업 등에서 나타나는 정권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의 또 다른 상징이라는 것이다.

공동대책위는 28일부터 매주 화요일 천막에서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대학, 보편적 복지 등에 대한 강의를 연다. 이 강의를 통해 대학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법인화에 대한 반대 여론을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목정민·이서화 기자 loveeach@kyunghyang.com>

[손동우의 정동만필] 날치기-서울대와 한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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