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승리 임박.. '3가지 무기'로 전세 뒤집었다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 2011. 3. 18.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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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부족장 네트워크 장악 ② 교묘한 심리전 ③ 친위군 육성 반란 예방

"우리를 공격한다고? 당신(서방국가)들이 우리에게 공격당할 것이다. 와라. 와서 우리를 때려 봐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국가원수는 16일 국영TV에 출연, 반군을 지지하는 서방국가들을 이렇게 비난했다. 17일엔 "우리는 오늘과 내일, 결정적 전투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가 군사 개입을 주저하는 사이, 반군이 장악했던 대부분 도시를 탈환한 '42년 독재자'는 자신감으로 충천해 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반군이 제2의 도시 벵가지를 점령했던 2월 말까지만 해도 서방은 카다피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이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자위야·브레가에 이어 16일 아즈다비야를 손에 넣은 카다피군이 이곳에서 고속도로로 150㎞ 거리인 벵가지마저 함락시킬 경우 리비아 내전은 사실상 카다피의 승리로 끝난다.

◆부족장 네트워크 장악이 결정적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카다피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복잡하게 엮인 리비아 부족 간 네트워크에 대한 장악력 때문"이라고 했다. 리비아는 와르팔라·주와야·카다파 등 3대 부족을 포함, 500개의 크고 작은 부족으로 이뤄진 나라다. 카다피는 42년 동안 리비아를 통치하면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부족 간의 대결과 갈등을 때론 부추기고, 때론 봉합했다. 자신의 정적(政敵)이라고 여겨지는 부족장에 대한 숙청을 서슴지 않았다. 각 부족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가장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자도 카다피였다.

시위 초기에 카다피 하야를 촉구하던 와르팔라·주와야 부족은 시위가 '정부 전복'의 성격을 띠자 카다피의 편으로 돌아섰다. 카다피가 무너질 경우 다른 부족들도 결코 안전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반정부 시위 현장에선 "부족주의 집어치워라" 같은 구호가 많이 등장했다. 카다피를 돕기 위해 고향에서 640㎞ 떨어진 수도 트리폴리로 왔다는 한 와르팔라족 남성은 "카다피가 꼭 좋아서라기보다, 리비아를 뒤집어엎으려는 반정부 시위대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타임에 말했다.

◆"카다피는 '미친개' 아닌 '미친 여우'"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와 천막에서만 자는 괴팍한 습성을 지닌 카다피에겐 '미친개'(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붙인 별명)라는 별명이 있다. 격월간지 포린폴리시는 그러나 "카다피는 교활한 심리전을 즐기는, '미친 여우'에 가깝다"고 했다.

반정부사태 발생 이후 카다피는 협박·회유를 반복하며 교묘한 심리전을 펼쳤다. 시위 발생 7일 만에 처음으로 국영TV에 모습을 드러낸 카다피는 "알카에다가 젊은이들에게 마약을 먹였다" "미국·영국이 시위대의 배후조종자"라며 '리비아 대 비(非)리비아' 구도를 만들었다. 시위대엔 "끝까지 색출해서 처형할 것" "피바다가 기다리고 있다"처럼 협박성 발언을 쏟아내 공포감을 유발했다.

서방국가들엔 막대한 양의 석유와 투자 기회를 무기로 삼아 '당근과 채찍' 전략을 썼다. 카다피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밀어붙이는 프랑스니콜라 사르코지대통령에 대해선 17일 "내 돈을 받아 대선 자금으로 썼다"고 폭로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반대하는 독일엔 "리비아에서 계속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예 친위군만 양성해 군 반란 예방

이집트

에서 무바라크를 몰아낸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동력은, 시위대의 편에 섰던 군이었다. 무바라크와 카다피는 모두 군인 출신이지만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군을 양성했다. 무바라크는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군을 국가의 구심점으로 키웠다. 반면 카다피는 군을 불신해 소수의 친위부대를 집중 육성할 뿐, 정규군은 부실하게 내버려두었다.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고 시위대에 빼앗긴 도시들을 탈환하는 데는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혁명수비대'(5000~1만1000명 추정)가 투입됐다.

[Snapshot] 反정부군과 카다피軍 양측 전력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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