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냥 온통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 같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언급한 “나라가 썩었다” 발언은 주요 언론의 1면과 사설을 통해 비중 있게 보도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틀린 게 아니다. 감사원의 감사위원으로 임명한 인물은 저축은행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에 연루돼 지금 감옥에 있다. 정부부처와 공기업과 관련한 비리와 부정의 썩은 냄새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은 분노를 넘어 냉소에 이를 지경이다. 정말로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개탄하는 목소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장·차관들 앞에서 국토해양부, 법무부, 교과부 등 부처를 언급하면서 공직기강해이를 지적했고, 검찰과 경찰을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한다고 질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후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민생점검 및 공직윤리 확립을 위한 장 차관 국정토론회 시작에 앞서 옷을 벗고 있다. ⓒ연합뉴스
 
좋은 얘기 같고 타당한 지적 같지만 주장의 주체가 대통령이라는 게 주목할 대목이다. 나라 전체가 정말 비리투성이처럼 썩었다면 국정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반성과 자성이 선행돼야 하는데 ‘남의 얘기’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6월 18일자 사설에서 “어쩌다 정부가 이렇게 부패의 늪에 빠져들게 됐는지 정권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부패와 비리는 다 그럴 만한 토양에서 자란다”고 지적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누구보다 깨끗하고 엄정한 잣대로 자신을 관리해야 할 감사위원이 비리에 연루됐다. 그 감사위원을 야당과 언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한 주체는 누구인가. 이명박 선거캠프에서 이명박 대선후보의 ‘BBK 의혹‘을 방어했던 변호사를 엄정한 정치중립이 요구되는 감사위원에 임명한 주체는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경향신문은 6월 20일자 6면 <국정 위기에 “내탓”은 없는 대통령>이라는 기사에서 “이 대통령은 최근 토론회와 각종 공개행사에서 전관예우,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지난 16일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서울시장 재임 시절 부처 측근이던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을 임명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 다르고 행동 다른 모습은 ‘부패척결’ 주장의 힘을 잃게 하는 요인이다. 참여정부 시절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던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4년간 뇌물을 주고받았다가 징계를 받은 공무원이 5.5배 늘었다는 행정안전부 발표를 생각한다면 대통령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4년차를 이어가고 있지만, 공식 임기는 아직 1년 하고도 8개월이나 남았다. 벌써부터 공직사회에 ‘레임덕’ 조짐이 엿보이다보니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칼날을 빼들었다는 관측도 있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려는 공직자들에게 엄중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직기강의 목소리를 높이려면, 그것이 여론의 힘을 얻자면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한다는 점이다. ‘비평가’의 입장에서 나라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가 아니라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솔선수범하면서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모습을 보여야 ‘부패척결’이라는 구호도 힘을 얻고, 실질적인 공직사회 개선도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허무개그’와 같은 공직사회 호통에 대해 오죽하면 보수언론도 질타하고 나섰을까. 중앙일보는 20일자 지면에 <대통령은 국정 비평가가 아니다>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사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대통령 발언을 지켜보면서 과연 국민과 공직사회에 공명이 얼마나 울릴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제기한 문제의 상당부분이 대통령의 책임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대통령은 과연 자신의 정권이 공직과 사회에 어떤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었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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