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알바 대학생 이소현·윤호산씨

정리 | 박경은 기자

“국책사업 비중만 조정해도 등록금 내릴 수 있잖아요”

‘엄마, 아빠 대학 가서 죄송해요.’

반값 등록금 시위현장에서 한 대학생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고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초·중·고 시절 착실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부모님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다니…. 자식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군대에 보내고, 휴학을 시킨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알바’와 ‘공부’에도 바쁜데 피켓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학생들. 가슴을 맞대고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이소현씨(20·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1학년·이하 소현)와 윤호산씨(25·서강대 법학부 3학년·이하 호산)를 서강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왜 반정부 시위라는 거죠?” 올해 대학 1학년이 된 스무살 소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그러게…. 그게 왜 반정부 시위가 되는 걸까.”

왼쪽부터 윤호산, 이소현, 김제동씨.<br><b>김제동</b> “나도 학교 앞 호프집에서 3년 동안 아르바이트했어. 우리 땐 그래도 뭐든 해서 먹고 살 수는 있었지. 적어도 학생시절에 빚은 없었거든.”<br><b>윤호산</b> “학생들을 최소한 빚쟁이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br><b>이소현</b> “뭐가 그리 힘들고 복잡한지 모르겠어요. 그냥 깎아주면 안되나요?”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왼쪽부터 윤호산, 이소현, 김제동씨.
김제동 “나도 학교 앞 호프집에서 3년 동안 아르바이트했어. 우리 땐 그래도 뭐든 해서 먹고 살 수는 있었지. 적어도 학생시절에 빚은 없었거든.”
윤호산 “학생들을 최소한 빚쟁이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소현 “뭐가 그리 힘들고 복잡한지 모르겠어요. 그냥 깎아주면 안되나요?”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느닷없는 질문에 대책없이 얼버무린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스무살 청춘’의 질문에 ‘불혹’을 앞둔 어른이 시원한 답을 못해주다니…. MC가 말문이 막히면 다 된 거다. 그렇다고 ‘아프니까 청춘…’ 운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현 = 오빠도 기말고사 기간 아닌가요?

- 난 리포트로 대체하려고. 불량학생이잖아. 기말고사 기간인데 아르바이트는 계속 하는 거지? 무슨 아르바이트해?

소현 =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해요. 밤 12시까지. 틈틈이 과외도 하고, 행인들 대상으로 설문이나 사인받는 길거리 홍보도 해요.

- 그럼 수업은 언제 듣는 거야?

소현 = 3일간 몰아서 수업을 들어요. 아르바이트 시간 맞춰놓고 수업시간표를 조절하는 거죠. 듣고 싶은 과목은 못 들어요.

호산 = 듣고 싶은 수업을 못 들은 지는 꽤 됐죠. 시간표를 짤 때 듣고 싶은 수업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하고 비는 날에 수업을 맞춰요.

- 원래는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하는 게 정상인 거잖아.

호산 = 저도 대학에 오기 전에는 그게 정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상황이 달라졌네요. 이 상태가 오래되다 보니 그냥 받아들이고 있어요.

- 무슨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

호산 = 요즘은 수녀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에요. 이전엔 별별 것 다 해봤죠.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할 때는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하고 아침에 수업갔어요.

- 그러면 수업이 돼?

호산 = 그러다가 휴학했었죠. 다 지탱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해군으로 입대했어요. 군대 가기 전에 한 학기 휴학했고 갔다와서 또 한 학기 했었죠. 그래서 모은 돈으로 이번 학기 다니고 있어요.

- 그럼 이번 학기 마치면?

호산 = 또 휴학해야겠죠. 그렇게 휴학해도 학자금은 대출로 해결해요.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한 달 하숙비가 40만원이고 학자금 대출이자 10만원에 휴대폰 요금 내고 용돈 쓰면 한달에 100만원 가까이 들거든요. 등록금은 졸업하고 어떻게 되겠지 생각해요.

- 등록금 대출은 얼마나 받은 거야?

호산 = 지금까지 1700만원요. 이제 3학년 1학기인데….

- 그럼 졸업할 때 3000만원 정도는 빚을 안고 나가는 거네.

소현 = 그래도 오빠는 취업 후 상환할 수 있는 걸로 빌리셨네요. 저는 취업 후 상환이 아니라 일반상환이라, 3년 안에 갚아야 해요. 입학하면서 430만원을 빌렸는데 한달에 이자가 1만7000원 정도 나와요. 지난달엔 그걸 제때 못 냈더니 하루에도 몇번이나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집이 일산이고 학교가 태릉이라 자취를 했었는데, 방값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왕복 4시간 걸려 통학하고 있어요.

[김제동의 똑똑똑](32) 알바 대학생 이소현·윤호산씨

▲ “반값 요구가 왜 ‘반정부’라는 거죠?”
▲ “그러게….” 대책없이 얼버무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 김제동

- 주변에 이런 형편에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지?

호산 = 비율로 따지기는 힘들죠. 그런데 제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아주 많거든요. 어른들은 그러잖아요. 누구나 아르바이트했다, 이런저런 장사도 다 해봤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도 해결할 수 있는 건 생활비뿐이거든요. 빚은 점점 쌓여가고. 그게 어느 순간 무섭게 덮칠 것 같아요.

소현 = 학교에 종종 선배들이나 유명한 분들이 특강을 오세요. 그분들 말씀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열심히 놀라고 해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그런데 진짜 말도 안되죠. 전 동아리 생활도 못해요. 수업, 아르바이트, 과외, 집. 이게 끝이거든요. 다른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곧 방학인데, 방학 때도 잠자는 것 빼고는 빡빡하게 계획 다 세워놓고 살아야 해요.

- 부모님은 뭐라고 하셔?

호산 =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갖고 계시죠. 전에는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셨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안하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잔소리도 안하시고. 부모님 권유로 법학과에 들어왔는데, 들어와보니 생각과 다른 점이 많아서 다른 공부를 하려고 해요. 부모님이 그 부분에 대해서도 별 말씀 못하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사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20세가 넘으면 본인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은 개인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지. 그래도 너희들 마음속에 희망의 싹은 갖고 있는 거지?

호산 = 지금 상황에서는 앞이 안 보이지만 계속 노력한다면 나중에 어느 정도의 위치나 모습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가져봐요. 그런데 제 삶에 최선을 다하다가도 의도치 않은 빚이 자꾸 쌓여가니까…. 막연한 희망을 가져보다가도, 그것마저 갖기 힘들게 만드는 세상이다 싶어요.

소현 = 착잡해요. 이게 진짜 현실이니까.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대학에 합격했다고 아주 기뻐했어요. 전 수시로 작년 10월에 합격하고 나서, 독서실과 학원보조일을 하며 돈을 모아야 했어요.

호산 = 저도 올해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어요. 집안에 대학생이 둘이니까 누군가는 희생을 하게 되더라고요. 동생은 원하는 학교 대신 장학금이 전액 나오는 학교로 갔어요. 그래도 동생에게 군대 가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김제동의 똑똑똑](32) 알바 대학생 이소현·윤호산씨

“학자금 빚에 질식할까 두려워요”
▲ 우골탑 대학이 30년 지났는데 사정 안바뀐 게 저들 책임인가. - 김제동

- 지금 당장 소원이 있다면 뭐지?

호산 = 등록금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졸업과 함께 빚을 갚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엔 등록금 없이 운영되는 곳도 있다고 그러던데요. 그런 걸 제가 소원으로까지 빌어야 하나? 갑갑하죠.

- 돈으로 인한 과중한 부담이 없어진다면 뭘하고 싶어?

호산 = 공부를 더 하고 싶죠. 듣고 싶은 수업 듣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어요. 그래도 저는 제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지방에 있는 대학 다니는 친구들은 더 힘들어요. 그나마 제가 배부른 입장이죠.

-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은 뭐야? 힘들게 대학을 졸업한 뒤엔 어떤 사회인이 돼 있을까.

호산 = 제가 철없을 때는 주변을 보는 게 부족했는데 오히려 군대 갔다오고, 이런 삶이 계속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눈이 좀 더 생겼어요. 세상사에 대해 관심도 많아졌고. 꼭 집어 이걸 해야겠다고 정한 건 아닌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 더 힘든 환경에 처해 있는 약자를 돕고 살겠다는 생각은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아. 연애는?

소현 = 해야죠. 그런데 남자친구를 만나고 할 여유가 안 생겨요. 현실이 너무 안 따라주니까 엄두도 못내죠.

- 연애를 못하는 건 여러 가지 사유가 있어. 내가 등록금 낼 아르바이트하느라 연애를 못하겠니?

소현 = 연애를 해도 걱정이네요. 졸업하고 취직해서 등록금 빚 다 갚으면 서른은 훌쩍 넘을 테고, 그리고 결혼자금 모아서 결혼하려면 오빠 나이는 돼야 결혼할 수 있다는 건데….

- 에이, 내 나이가 어때서? 그런데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있어. 등록금 내리는 것은 대학에 못 간 아이들과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다고.

호산 = 글쎄요. 등록금이 낮아지거나 없어지면 대학에 안 가는 아이들은 있을 수 있어도 못 가는 아이들은 없을 것 같은데요. 돈 없어서 포기하는 아이들도 많을 텐데, 그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등록금 낮추면서 세금을 더 걷네 마네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국가사업 비중만 전환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장애인을 위한 복지에도 세금이 들어가는데, 그걸 비장애인에 대한 형평성 문제라고 따질 건가요?

- 맞아. 내가 어이없는 질문을 한 이유는, 이걸 너희들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돼서야. 너희들은 이 사회 구성원 누구보다도 사회 전체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살고 있는데, 이기적이다, 편하게 놀고 먹겠다는 생각이다 이러면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해 미치겠어. 아, 낮술이나 먹었으면 좋겠다.

캠퍼스에 학생들과 자리를 폈다. 나름 연예인이라고 학생들이 알아보며 슬쩍슬쩍 아는 체를 해온다. “제동이 형, 트위터 많이 보고 있어요.” “기말고사 기간인데 책 봐요. 트위터 보지 말고.”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요.” “함께는 안돼. 나 감기 걸려서 며칠 동안 엄청 고생 중이야. 옮으면 기말고사 망치잖아.”

괜찮다며 살갑게 다가와 옆자리에 앉아서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는 친구들을 보면서 슬쩍 목이 멘다. 다시 오지 않을 저 청춘의 한순간을 ‘밤샘알바’와 ‘쪽잠’으로 보내야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저 1960~70년대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렸던 대학이 2000년대를 훌쩍 넘어서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은 게 저들의 책임인가.

학생들과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시고 싶은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한 친구가 다가와 불쑥 약봉지를 내민다.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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