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죄책감 두려워서.. 인간은 협력한다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2011. 5. 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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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협력함으로써 정신적 보상을 받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기존 이론과 달리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생기는 '죄책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협동을 이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큰 집단에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협력을 하는 것은 징벌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다른 사람과 협력도 하지 않으면서 집단으로부터 혜택만 받는 '무임승차자'를 앞장서서 벌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결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협력의 이면은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죄책감이 협력 이끈다

미 애리조나대 심리학자인 알랜 산페이(Sanfey) 교수와 미국 엘러 경영대의 행동경제학인 마틴 듀펜버그(Dufwenberg) 교수 공동 연구진은 인간이 다른 사람과 협력할지를 결정할 때의 뇌 상태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찍었다. fMRI는 뇌의 특정부위가 작동하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끌어들일 때 해당 부위를 마치 불이 켜지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준다.

연구진은 30명의 자원자에게 일종의 투자게임을 하도록 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믿고 돈을 맡긴다. 투자받은 사람은 그에게 더 많은 돈을 돌려줄 수도 있고, 아니면 입을 싹 닦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투자자의 믿음에 부응해 돈을 돌려주는 협력 행위는 뇌의 보상 중추를 작동시킨다고 생각해왔다. 즉 협력을 하면 긍정적인 감정이 생긴다는 것.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 투자자의 바람에 협력을 한 사람들의 뇌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가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분노나 혐오, 또는 고통이 닥칠 것을 예감하거나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는 경험과 같은 감정이다. 이에 비해 협력하지 않은 사람들의 뇌에서는 보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영역이 작동했다.

연구진은 "인간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며 "강제조항이 아님에도 팁(tip)을 낼 때는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려 생기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 이른바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이끈다는 말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신경과학분야 국제학술지인 '뉴런(Neuron)' 최신호에 게재됐다.

◆큰 집단의 협력은 무임승차자 징벌로

작은 집단에서는 협력이 쉽다. '네가 한 만큼 나도 하겠다'는 상호주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익명성이 보장되는 큰 집단이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한 나라가 전쟁에 돌입했을 때 모두 전쟁자금을 모금하고 음식물을 서로 나누지만, 일부는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만 기다린다. 일종의 '무임승차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인류학자인 로버트 보이드(Boyd) 교수는 지난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큰 집단에서의 협력은 징벌에 의해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애리조나대의 투자게임은 30명이라는 소수 집단에서 이뤄졌다. 당연히 누가 투자했는지, 누가 투자받고 입을 닦았는지 알기 쉽다. 부족이나 국가와 같은 큰 집단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어떤 사람이 '무임승차자'로 협력하지 않아도 익명성에 기대 죄책감 없이 사회 집단이 주는 혜택은 그대로 누릴 수 있다.

보이드 교수는 무임승차자를 막는 수단이 징벌이라고 봤다. 이를테면 부족 간 전쟁에서 아무런 협력을 하지 않은 사람은 배우자를 얻을 수 없게 하는 식이다.

문제는 무임승차자를 징벌하려면 희생이 따른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징벌을 하다가 친구나 가족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이냐'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이드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조건을 만들었다. 우선 무임승차가 있으면 사회에서 징벌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 무임승차자가 징벌 전에 미리 마음을 바꿀 기회를 주는 동시에, 누구라도 징벌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 징벌을 함으로써 생기는 희생을 집단 전체가 나누는 것이다. 보이드 교수는 실제 사회의 협력관계가 이와 같은 조건하의 징벌로 유지됨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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