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우리 대학생들이 달라졌어요

올해 들어 ‘반값 등록금’ 위한 촛불시위·가두행진 등 나서

"서울대 학생들 5일째 본관 점거.” “대학생들 6일째 가두시위.”
2011년 대학생들의 투쟁이 심상치 않다.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뉴스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조직적인 학생운동이 다시 방송뉴스와 신문지면에 등장했다. 불과 1~2년 전 일부 진보논객들은 “남한사회에서 학생운동은 끝났다”고 선언했고, 한 칼럼니스트는 “20대 너희에게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말을 스스로 주워담을 때다.

5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기남 기자

올해 초부터 대학생들의 촛불시위, 점거농성, 가두투쟁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3~4월 경희대, 고려대, 이화여대, 인하대, KAIST 등 전국의 대학생들이 비상학생총회를 열어 학교 당국에 등록금 동결, 비민주적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5월 30일에는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의 비상총회가 본관 점거로 이어졌다. 이 비상총회에는 20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해 재학생의 10%(1650명)라는 정족수가 만족됐다. 6년 만에 열린 비상총회에서 서울대 학생들은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를 위한 행동 개시’, ‘행정관(본관) 점거’ 두 가지 안건에 80%가 넘는 지지를 보냈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 점거농성
광화문에서는 대학생들의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5월 29일부터 조건없는 반값 등록금 이행을 외치며 기습 촛불시위를 벌였다. 시위 닷새째인 6월 2일부터는 시민들이 촛불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날은 권해효, 김제동, 김여진 등 유명 연예인들과 ‘세금혁명당’ 제안자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이 참석했다. 뉴스와 트위터 등으로 소식을 접하고 수백명의 시민들이 가세, 모두 1000여명이 집회를 이어갔다. 집회 참여자들은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 병력에 막혔다. 이들은 평화롭게 구호를 외치다가 밤 11시 30분쯤에 자진 해산했다.

터져나오는 대학생들의 투쟁엔 이유가 있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배경은 지나치게 높은 등록금이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국·공립, 사립을 막론하고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수준이다. 국내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싼 고려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의 연간 등록금은 각각 1279만6000원, 1251만4000원이다.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학업 중단율은 4년제 대학생의 경우, 2000년 1.5%에서 2010년 4.0%로 2.5배 높아졌다. 이처럼 한계에 달한 대학생들이 폭발한 결정적 사건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철회다.

이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를 설치해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반값 등록금은 실제 반값이 아니라 심리적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취지”라는 발언이 알려졌고, 덩달아 몇 년간 등록금을 동결해오던 대학들이 등록금을 인상하기 시작했다. 올해 사립대 110곳 중 79곳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가장 격하게 등록금 투쟁에 나섰던 고려대, 이화여대, 덕성여대, 서강대, 숙명여대, 경희대 등은 모두 지난 2년간 등록금이 동결됐다가 올해 인상된 학교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학생들의 의식이 진보적으로 변하고, 정치 참여가 높아진 것 역시 폭발적 학생운동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20대는 42.5%였다. 하지만 2008년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시위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면서 20대는 급격히 야당 지지성향으로 돌아섰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오세훈 현 서울시장을 지지한 20대는 34.0%였던 반면,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율은 56.7%였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월 31일 법인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손학규 민주당 후보는 20대로부터 63.9%의 지지를 얻은 반면,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도는 33.6%였다. 20대의 투표율 역시 꾸준히 높아졌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33.9%, 2008년 총선의 28.5%였던 20대 투표율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41.4%로 높아졌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왜 하필 2011년에 대학생들의 투쟁이 예전보다 격화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년 지방선거 이후 무상급식 등 복지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는 점을 들었다. 신 교수는 “지방선거를 치른 이후 복지문제가 여야를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이슈가 됐다. 등록금 문제 역시 복지문제의 일부분인 만큼, 여야를 가리지 않고 회피할 수 없는 쟁점이 됐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비싼 등록금 문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속으론 이해 못할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대학생들만의 문제로 여겨졌던 등록금 문제가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전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는 의미다.

복지문제 이슈화로 사회적 관심 커져
올해 초부터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행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경험을 한 것 역시 학생운동 부흥의 한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작년 말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 해가 바뀌자마자 전원 해고당했다. 이들은 홍대 및 다른 학교의 대학생들, 기타 ‘외부세력’들과 함께 49일간 본관 농성을 벌였고, 무사히 전원 복직했다. 경희대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철회시켰다. 경희대는 올해 등록금 3% 인상안을 고지했지만, 학생들이 비상총회를 열고 집단 반발하자 등록금 인상분 3% 중 2%는 환급, 1%는 장학금 및 학내 비정규직 환경 개선에 사용하기로 학생 측과 합의했다. 고려대에서 비상학생총회를 주도했던 ‘고대녀’ 김지윤씨는 “경희대와 홍익대에서 학생들이 학교 측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런 승리의 경험이 다른 대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시민단체와 유명인들의 적극적 참여, 소셜 미디어의 발전도 폭발적 학생운동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6월 2일 트위터에서는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전파한 집회 상황이 퍼졌다.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서도 현지 상황이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신 교수는 “학생운동단체보다 경험도 많고 영향력도 큰 시민단체들이 등록금넷과 같은 운동 네트워크를 세웠다. 또한 김여진, 김제동, 선대인 등 유명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점들과 더불어 소셜 미디어의 발달이 학생 운동권 외에도 폭넓은 집단의 사람들을 투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