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비공개최고위원회 도청 의혹과 관련된 문건은 <한국방송>(KBS)쪽이 작성해 건네진 것으로 보인다고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들이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공영방송이 수신료 인상을 위해 제1야당 당대표실을 도청하고 도청내용을 집권여당에 건네줘 야당을 공격했다는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민주당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케이비에스 관계자가 회의를 도청한 뒤 제3자를 통해 한나라당에 녹취록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무선마이크를 회의실 안에 넣어 녹음한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국방송 기자가 회의내용을 몰래 녹음했고, 이를 제 3자를 통해 한나라당에 건네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도청한 쪽에서 ‘제3자’를 통해 도청 사실을 민주당에 알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제보를 받았다는 ‘불법 도청 범인’이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의 비공개회의 발언 녹취록”이라며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대한 천정배 최고위원 등의 발언을 공개했다. 민주당은 이 녹취록에 구어체 토시 하나까지 그대로 적혀 있었다며 도청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광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8일 국회 브리핑에서 “민주당은 당대표실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해 유력한 제보를 받았다”며 “민주당은 수사기관에 이 내용을 즉각 통보하고 불법 도청에 대한 철저하고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홍 대변인은 또한 민주당 회의 발언 녹취록을 공개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선 “불법 도청의 장물에 해당하는 녹취록을 입수하고서도 지금까지 민주당에서 흘러나온 메모지라고 뻔뻔한 거짓말을 하면서 진실을 호도하고 국민을 속인 점에 대해 즉각 사과해야 한다”며 녹취록 제공자를 밝히라고 압박했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해 <한국방송>은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상덕 한국방송 홍보국장은 “도청 관련한 사항은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이야기할 입장이 못된다”고 말했다.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상한 해명이다.

광고
광고

한선교 의원은 <한겨레> 기자에게 “(한국방송 관계자가 작성했다는) 녹취록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29일 “문건의 작성자는 민주당이고 한국방송에서 받지 않았다”는 한 의원의 말을 전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는 29일 성명서를 내어 “취득한 정보를 보도 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 범죄 행위”라며 “회사는 관련사실 여부를 조속히 파악하고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광고

민주당은 지난 26일 이번 도청의혹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 이번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