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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끊고 다시 본 세상

한지혜|소설가

트위터를 끊었다. 인터넷을 오래 했더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것 같아서였다. 어떤 사안에 대해 빠르게 알 수 있는 건 좋은데, 그 속도만큼 판단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해야 하는 사안이 있는 법인데, 언제부터인가 일단 말을 하고 나중에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든 내 목소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들을 따라하는 부화뇌동형 발언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다른 사람보다도 내가 내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어떤 일이든 천천히 깊고 오래오래 생각하고 분명하게 쓰자. 그것이 글을 쓰는 자의 기본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이미 일상화된 환경에서 랜선을 자를 수는 없고 해서 우선 트위터를 멈춰보았다. 그랬더니 세상이 다 조용해졌다. 어찌나 조용한지 적막강산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없는 시간이면 항상 켜져 있는 라디오는 FM 고정이다. 오래된 음악과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미뤄둔 책을 몇 페이지 뒤적거리다 보면 평화가 따로 없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무슨 일이 생겨 다급한 전화라도 오지 않는 이상 내내 지속될 고요이고 평화이다. 마음만 잘 먹으면 무념무상의 도를 닦을 수도 있다.

[낮은 목소리로]트위터를 끊고 다시 본 세상

그 고요의 절정이, 평화의 나날은 그러나 가짜다. 그럴 리가 없다. 트위터 안에서 보았던 그 많고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 사회적 폭력, 자본의 음모가 이렇게 한꺼번에 사라질 수가 없다. 사건·사고는 도처에 널려 있다. 단지 알지 못할 뿐이다. 군부대에서는 총기로 동료를 죽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도심 한가운데에서 멀쩡한 건물이 흔들리고, 저 멀리 남도에서는 오십의 여인이 대기업의 부당해고에 맞서 반년 가까이 고공의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중이다.

여기저기 위태로운 조짐들이 한두 개가 아닌데,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대안 혹은 원인에 대한 분석은 황당하거나 막막하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에 대한 증언은 이어지는데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군 통수권자가 군대에서의 연이은 사고를 폭력이 아닌 적응 능력의 문제로 일축한다. 고통과 불합리에 차별과 폭력에 적응하는 건 스스로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인데, 폭력보다 적응이 문제라는 말은 인간으로서의 존엄보다 체제 수호가 우선이라는 뜻 같아서 무섭다. 고공의 크레인에 올라간 초로의 여인을 응원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모인 희망버스가 불순세력으로 몰려 진압당하는 것도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비상식적인 사회가 아니라면, 39층이 일시에 흔들린 원인이 고작 스무 명도 안되는 사람이 운동 좀 했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발표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 발표가 사실이라면 서른 명이 동시에 뛰면 건물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폐쇄조치 대신 안전진단을 ‘완료’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고 화가 나는 일들은 TV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신문에도 실리지 않는다. 어쩌다 몇 개의 문장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외침은 누구의 외침이건 간에 여당 대표 선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대통령의 아프리카 방역 활동에 묻히고야 만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메인뉴스는 한층 흥미롭다. 연봉 1억원인 사람들을 위한 재테크 조언,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 그리고 막장 드라마 줄거리.

현실감을 찾겠다고 트위터를 끊었는데, 오히려 안정적으로 정리되고 가공된 매트리스의 세계로 진입한 느낌이다. 불편한 진실을 단지 외면하는 것만으로도 평온과 평화의 나날이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배운 셈이다. 동시에 그 사실은 내게 전혀 다른 것을 일깨워준다. 아무 일 없다고 믿었던 하루가 사실은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하루였으며 내가 느꼈던 소소한 평화가 사실은 언제라도 치솟을 수 있는 끓는 용암을 잠시 숨겨둔 바닥 위에 서 있는 상태라는 걸, 모든 진실은 차단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차단한 것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광화문에서 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 때, 스스로 차비를 마련하여 초로의 여인을 응원하러 떠날 때, 누군가 자신의 불이익을 각오하고 내부의 비리를 폭로할 때, 누군가의 사주다, 음모다 배신이다 하며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이 알고도 모르는 척하거나 정말 오해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 작정하고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소시민적 외면이 정권의 탄압이나 언론의 은폐보다 어쩌면 더 무섭고 질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배반하는 건 늘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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