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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장의 사진과 세 장의 그림 - 현장예술가 최병수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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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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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장의 사진이 있다. 1987년 6월 9일, 경찰이 쏜 최루탄 직격탄을 머리에 맞고 피흘리며 쓰러지는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다.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군사독재에 맞선 민중들의 투쟁이 더욱 크게 타오르는 계기가 됐고, 결국 정권은 '6.29 선언'이라는 회유책으로 당시 핵심 요구 중 하나였던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월 9일 열린 장례식에는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87년 6월 항쟁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된 것은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제목의 판화 때문이기도 하다. 

 

http://www.moca.go.kr/html/item/item_image.jsp?artwork_image=DP/DP-06175.jpg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판화를 그린 사람은 '현장예술가' 최병수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목수로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민중미술을 접하게 되었던 그는 신문에 난 사진을 보고 그날 밤을 새워 목판화를 새겼다고 한다.

 

1987년 그는 이한열의 사고 소식을 버스에서 옆사람이 보던 신문을 통해 알게 됐다.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왠지 신문에 난 그 사진을 판화로 새겨 가슴에 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손바닥만 한 판자에 이한열이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진을 새겨넣는다. 다음날 그가 손수건에 이를 찍어 집회장에 나가자 너도나도 달라고 해 몇천개를 찍었다. 누군가 그것을 대형 그림으로 그릴 것을 제안했다. 목수로서 공간 개념에 밝았던 그는 먹줄을 퉁겨서 그리면 되겠다고 여기고 ‘겁없이’ 덤벼들었다. 80년대 민중미술이 낳은 빼어난 양식, 걸개그림이 탄생한 순간이다.     - <한겨레21> 제532호 (2004. 10. 28.)

 

이 판화를 시작으로 그는 '장산곶매', '노동해방도' 같은 80-90년대 대표적인 걸개그림 작품을 그렸다. 또한 새만금 갯벌에 수많은 장승을 세우기도 하고, 국제 환경회의장 앞에서 기후온난화를 상징하는 얼음 펭귄조각을 만드는 '펭귄이 녹고있다' 란 작품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여기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미국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이라크 어린 소녀와 그 소녀를 양손으로 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사진이다. 그런데 소녀의 발목이 포탄에 의해 완전히 뭉개져 너덜너덜하게 붙어있어 전쟁의 끔직함을 더해준다. 그런데 이 사진 역시 사진보다는 그림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바로 '너의 몸이 꽃이 되어'란 작품이 그것이다.

 

 

그림에는 어린 소녀의 끊어진 발목 대신 꽃무더기가 그려져 있다. 소녀의 발목에서 흘러나온 꽃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 땅을 덮고 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난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미국의 침략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비판과 어린 소녀의 죽음에 대한 애도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기원이 담겨 있는 그림은 슬프지만 참 아름다웠다.

 

이 그림을 그린이 또한 최병수였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대공습이 있기 얼마 전인 2003년 3월에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인간방패가 되어 직접 바그다드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그였기에 사진을 보고 받은 충격을 그림으로 옮기고 또 직접 시를 쓰기까지 했다.

 

너의 몸이 꽃이 되어 

 

 

외마디 절규로, 지린 고통으로

피 흘리며 잠을 자고, 피 흘리며 잠을 깨며

저 하늘로 날아갔지

 

아이들아 용서해라! 애원한다 아이들아!

잔인한 현실, 탐욕스런 현실을

살육을 설교하고 자행하는 자들의 총과 칼을

 

너의 몸이 꽃이 되어, 누 천년 누 만년

너의 넋이 꽃이 되어

너의 넋이 꽃이 되어

 

그런데 얼마 뒤 그가 위암으로 위를 60%나 잘라내고 투병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난 그가 부디 병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리고 여기, 세 번째 사진이 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칠흙같은 어둠의 장벽에 작은 총구 하나를 내고자 했던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끌어안고 가슴 아파하는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갖은 회유와 탄압에도 타협하지 않았고, 70-80년대 내내 투쟁하는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되셨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을 노동현장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전태일 평전>의 초판본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표지에 실리기도 한 이 사진은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 그 시작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다.

 

지난 9월 3일, 이소선 어머니께서 81년 동안의 삶을 마감하시고 아들 전태일 열사가 있는 곳으로 떠나셨다. 많은 이들이 이소선 어머니를 추도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고 추모글과 추모시를 썼다. 이소선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 하고 싶었지만, 꼭 서울까지 가봐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장례위원 참가신청만 하고 마음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뭐가 그리 바빴는지 장례식 날이 하루 지난 뒤에야 트위터에서 장례식 모습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하나의 그림을 보는 순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에는 위의 사진과는 반대로 이소선 어머니의 영정을 아들 전태일 열사가 들고 있었다. 영정 속의 사람과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 그 두 사람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림은 정말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그 그림 속에는 전태일 열사의 삶과 이소선 어머니의 삶이 모두 다 들어 있었다. 아 이런 게 예술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사람 역시 최병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름! 그는 역시 암을 이겨내고 살아있었구나, 살아서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을 또다시 나에게 보여주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그에게 참 고마웠다.

 

또 몇 년 뒤 그가 또 다른 작품으로 아름다움과 감동을 전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찾아보니 몇 년 전 그의 삶과 작품을 담은 책이 두 권 나와 있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김진송, 최병수 지음, 현실문화연구)와 <병수는 광대다>(박기범 지음, 노순택 사진, 현실문화연구)가 그것이다.)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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