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스쳐간 땅 日 현재와 미래를 본다] 상. 자연의 무서움, 인간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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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에 펼쳐진 '축제'…'희망의 불씨'로 활활

지난 16일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에서 복구반 대원들이 재건작업을 하고 있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4개월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다.

# 재해 앞 인간의 무력함

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 발생 후 4개월이 지난 7월 16일 미야기 현 해안지역의 이시노마키 시를 찾았다. 이곳은 큰 쓰레기 처리장 같았다. 하늘에 까마귀들이 날고, 그 아래로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건물 속에서는 파리떼가 들끓고 있었다.

중장비가 동원됐지만 폐허가 언제 정리될지 기약하기 힘들었다.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들은 아직도 시신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3·11 지진과 쓰나미로 1만5천여 명이 숨지고 5천여 명이 실종된 상태다. 미야기 현에서만 9천300여 명이 죽었고 2천500여 명이 실종됐다.

그러나 이런 숫자만으로는 참혹한 현장의 느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이시노마키 시의 한 학교 건물 벽에는 3층 높이쯤에 긴 선의 얼룩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쓰나미 자국이다. 그 아래에 서면 사건 당시 10m가 훨씬 넘는 파도가 덮치던 순간이 상상돼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일본의 재해복구 총괄 책임자인 이오키베 부흥구상회의 의장은 "쓰나미 우려 지역에는 건물은 튼튼하게 짓고 높이 7m 아래층에는 주거가 안 되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선진과학을 자랑하는 일본도 자연 앞에선 어떤 방어벽도 완벽할 수 없기에 주거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재해는 대형 참사로 끝나지 않았고, 일본의 이미지 악화와 내수 위축도 야기했다. 센다이 시 오쿠야마 에미코 시장은 "미야기현 내에서 센다이의 피해는 비교적 경미한 편이지만, 한동안 결혼식도 열리지 않았고 외식업소들도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었다. 이제 그 많던 한국인 관광객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시노마키시, 뼈대만 남은 건물·시신 아직 발견
침착한 재건작업·6개 현 롯콘사이 축제 '감동적'


# 천천히 일어서는 인간의 의지

자연의 무서움을 실감케 하는 재해현장에서는 일본의 저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센다이 시의 항만엔 아직도 구겨진 컨테이너가 잔뜩 쌓여 있지만, 한편에서는 선박에 컨테이너가 분주하게 실리고 있었다. 이곳의 가동률은 20%대이다. 항만 관계자는 "많이 낮은 수치일 수 있지만, 항만 전체가 물에 잠겼고 육중한 크레인도 쓰러졌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항만 재가동 자체가 뿌듯하다"고 말했다.

미야기 현의 피해지역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양옆으로 이중삼중으로 수백m씩 늘어선 폐차량 더미를 볼 수 있다. 집계하기도 어려운 차들의 무덤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빠르게 복구 중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와테 현에 위치한 액정 가공기업 구라모토의 경우 공장이 폐쇄되고 180억 원 가까운 피해가 발생해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 사토시 스즈키 사장은 "5월부터 공장이 재가동돼 이전과 비슷한 생산수준이 됐다"며 "사원들이 이탈하지 않고 복구에 적극적이어서 예상보다 배 이상 빠르게 회복 중"이라고 얘기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7월 말께 지진 피해지역 공장의 90%가 생산을 재개할 것으로 예측했다. 주류 유통업자인 아사노 야스시로 씨는 "수출용 술을 실은 컨테이너가 쓰나미에 떠밀려가 울기도 했지만, 정부의 수출행정 간소화와 피해지역 술 구매운동으로 지금은 팔 술이 없어 고민"이라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의 침착성이다. 미야기 현에서 발생한 32만여 명의 이재민 상당수는 열악한 임시 가옥에서 불편하게 생활하고 있으나 집단적인 반발은 없어 복구운동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18일 일본 여자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서 기적같은 우승을 하자 피해지역 언론들이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해 실의에 빠진 주민들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지난달 26일 이와테 현의 불교 성지인 히라이즈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히라이즈미 정의 스가하라 정장은 "월드컵 우승 등 기쁜 소식들이 언론을 통해 크게 알려지면서 일본 동부지역 전체에 기쁨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7일 이와테 현 아오모리 지방축제가 피해지역 연안에서 올해도 쉬지 않고 열린 것도, 센다이 시에서 피해지역 6개 현 합동으로 롯콘사이 축제가 치러진 것도 희망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였단다. 미야기 현의 복구업무를 맡은 미토신고 공생반장은 "곧 재개장할 센다이 공항에 외국인 방문객들이 붐비며 지역이 활기를 찾을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며 미래를 낙관했다.

미야기·이와테 현/글·사진·동영상=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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