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견출판사 생각의나무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는데, 소식을 접하자 마자 절판이 염려돼 구한 책은 켄트 가이의 <사고전서>(생각의나무, 2009)이다(알라딘에는 이미 품절이어서 교보에서 구했다). 청 건륭제 때 편찬된 이 방대한 서물을 다룬 저자의 하버드대 박사학위논문이다. 건륭제 혼자만의 열람을 위해 편찬했다는 사고전서는 대략 3,600여 종, 36,000여 책, 79,000여 권 규모라 한다. 거의 책으로 쌓은 만리장성이라 할 만하다. 어제 교수신문에서 이 사고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접했다. 어림계산으로 200년이 걸리는 작업이라 한다. 한여름밤의 몽상일는지 모르지만 그럴 듯하게 여겨져 스크랩해놓는다.      

  

교수신문(11. 07. 18) 우리 학계에 존재하는 상상력의 빈곤

나는 2003년부터 7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朱子大全』과 『朱子語類』를 번역하는 연구팀의 일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고전의 번역 과정에서 역주의 필요성 때문에 참고문헌을 뒤적이는 일은 모든 번역자들이 마주치는 일상의 다반사다. 거기에 수반되는 두통과 지끈거림은 겪어본 이들은 모두 공감한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로 구축된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감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타이완 중앙연구원의 25사 원문 서비스, 그리고 문연각본 『四庫全書』를 디지털화 한 전자판 『사고전서』였다. 작업 도중에 정확한 서지사항의 표기를 위해 원문 확인이 필요한 경우 전남대 도서관 4층의 고한적실을 이용했다. 거기에는 상무인서관에서 출판한 『사고전서』의 영인본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거의 매일 도서관을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고전서』에 수록된 책들을 다 번역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 총서는 현대적인 제책으로 1천501권이고, 한 쪽 당 10행 20자 원문이 4면씩 축소 영인돼 있다. 실제로 전체 분량은 단행본 6천여권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평균 쪽수가 1천쪽이라고 간주하고 일반적인 한문 고전의 번역 관행을 적용할 경우, 1만8천 권 정도로 이뤄진 학술 총서가 발행된다. 어림잡아 2만여권 내외의 번역물이 예상되는 것이다.

연인원 200명을 기준으로, 개인당 2년에 단행본 한 권씩 번역한다고 가정할 경우 약 200년이 소요된다.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학술 연구 교수의 수준을 적용해서 1인당 연간 3천600만원의 인건비를 책정한다면 1조 4천400억 원이 필요하다. 결국 1조 5천억 원 정도와 연인원 200명, 200년의 시간이 번역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현재 기준으로 5조원 정도의 예산을 300년 정도 투입하는 선이면 가능할 것이다.

2만권의 번역본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만나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탄생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四庫學’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것의 내용은 중국학, 동양학, 고전학, 문화학, 신화학, 천문학 등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여러 가지 학문의 상호착종과 교차를 특징으로 삼는다.

현대적 용어를 빌리자면 ‘인지적 유동성(cognitive fluidity)’혹은 ‘개념 혼성(conceptual blending)’이라고 불리는 인지적 능력은 자신의 창발적 활동을 위해 이러한 지적 배경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포코니에와 터너가 말했다시피 ‘인간의 문화와 사고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인간의 문화와 사고는 이미 이용 가능한 정신적 구성물과 물리적 사물로부터 작동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이란 이런 현대적 이해를 예언하는 고풍스런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하는 주된 이유가 하나 있다. 어째서 우리 학계에는 겨우 100년을 유지하는 학술 계획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 인문학의 전통을 최초로 개인 문집을 남긴 최치원의 『계원필경』으로부터 잡더라도 벌써 1천300여 년이 흘렀다. 이 학문의 역사 속에 겨우 1세기를 지속 기간으로 하는 비전과 목표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빈곤을 생각해보면 왜소함과 답답함에 현기증을 느낀다. 학술계에서조차 이런 상상이 불가능하다면 어느 영역에서인들 같은 것이 가능하겠는가.

1세대가 시작하고, 2세대가 골격을 세우며, 3세대가 지붕을 올려 완성하는 상상의 학술 생태계를 그려보는 우활한 몽상은 대체적으로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경ㆍ사ㆍ자ㆍ집의 四大江이 현대 한국어로 미래의 인지적 상상력과 만나서 문화의 꽃을 피우는 몽환경은 삽질이란 평이한 낱말의 사용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삽질이라는 낱말은 삽이 꽂혀야 할 곳으로서 대상화되는 저 자연의 사대강 속에서 자신의 깊은 의미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낱말의 의미는 가정된 대상과의 지칭 관계가 아니라 다양한 사용 속에서 발견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런 종류의 삽질을 위해서는 창조성이 폭발하는 무형의 문화 공간을 상상하고 그려내야 하는 도저한 상상력이 필요한 만치, 빈곤한 상상력에 감식안마저 무딘 누군가에게는 사대강이 콘크리트로 정돈되는 데 필요한 몇 년마저도 터무니없이 길게만 느껴지질 것이다.(이향준 전남대 박사후연구원·철학)  

11. 07. 23.  

P.S. <사고전서>의 번역자는 중국사 전공자로 <사고전서> 외 유익한 책을 여럿 우리말로 옮겼다. 벤저민 엘먼의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예문서원, 2004)도 그중 하나인데, 나머지 책들도 모두 구해놓으려고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사람 2011-07-27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흥미있는 글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정사 24사를 누군가 나서서 번역했으면 합니다. 사기는 완역이 나온 것 같은데 한서 삼국지쯤 가면 초역이고 그 이후는 번역이 아예 없는듯합니다. 만일 중국 정사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으면 여러 후속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학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조선왕조실록 완역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중국과의 교역이 이미 미국을 넘어선 시점에서 중국역사 연구의 시초는 바로 중국 24사의 번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꿈일까요.

중국 정사 24사는 뉴욕 한인 밀집지역인 플러싱 공립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데 한문으로 된 것이라 전혀 접근이 불가합니다. 쩝 (미국 공립 도서관은 정말 놀랍죠, 대학 도서관은 말할 것도 없고요)




로쟈 2011-07-27 22:10   좋아요 0 | URL
24사 번역은 20년쯤 걸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