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3) '간담회' 명목으로 밥값·술값 물쓰듯] 정치자금 절반이상 먹고 마시고..

2011. 9. 1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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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아니면 식당.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하면서 각종 간담회를 열었다고 신고한 장소는 대부분 먹고 마시는 곳이었다. 홍보행사비로 분류된 간담회, 정책연구비에 포함된 정책토론회와 식비로 분류된 의원·보좌진의 밥값을 합치면 인건비·사무실 유지비·교통비 같은 필수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자금의 절반이 넘는다.

◇술집 간담회=한나라당 한선교(경기 용인 수지) 의원은 지난해 3월 19일 '탈북자 인권정책 간담회'를 개최했다. 장소는 서울 논현동 '씨그램'. 술집이다. 여기서 쓴 32만3400원은 정치자금으로 지불했다. 영수증에 찍힌 시각은 오후 10시44분. 같은 날 한 의원은 유니세프 북한사무소 신임대표와 강남의 고깃집 '못잊어'에서 식사를 하고 28만7000원을 역시 정치자금으로 지불했다. 씨그램은 2차 모임이었다.

12월 10일에는 '인권 사각지대에 관한 해결책 논의 간담회'를 열고 18만9000원을 역시 정치자금으로 결제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샤갈이라는 바. 오후 8시39분이었다. 역시 오미찌라는 일식당에서 같은 주제의 간담회를 열고 20만9000원을 쓴 뒤 이어진 모임이다.

한 의원 측 관계자는 "간담회 지출이라는 게 국회에서 모임을 한 뒤 같이 밥 먹은 것도 포함되고, 2차, 3차로 이어지면서 맥주를 마시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민주당 백재현(경기 광명갑) 의원은 지난해 9월 14일 '식대(의정활동)'란 명목으로 16만5000원을 지출했다. 지출한 곳은 '락앤락'이라는 칵테일 바였다. 백 의원 측은 "지역사무소 직원들끼리 사무소 인근 가게에서 맥주 한잔 마신 것 같다"고 했다.

◇정치자금 블랙홀=공식적인 모임보다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더 솔직한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식당에 앉으면 토론회가 되고 술집에서 잔을 부딪치면 간담회가 되는 식의 지출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올해 6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같은 당 현경병(서울 노원갑) 전 의원은 지난해 '의정토론회 밥값'이라며 124회에 걸쳐 1457만2635원의 정치자금을 썼다. 1주일에 2∼3번 10여만원씩을 쓴 셈. '토론회' 장소는 주점 식당 고깃집 호프집 호텔 패밀리레스토랑까지 다양했다.

의원들이 정치자금에서 수백만원씩 떼어내 보좌관에게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술 마시고 밥 먹으라고 주는 돈이나 마찬가지다. 보좌관에게 600만원을 지급했다는 어느 의원실 관계자는 "보좌관, 비서관들이 전문가나 기자들과 만나다 보면 술값으로도 엄청 쓰게 된다"며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따로 정치자금에서 활동비로 지급하는 것인데 이것도 모자라지 결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에게도 술값과 밥값이 적지 않은 부담인 것이다.

1년간의 추이를 살펴보면 각종 간담회를 포함한 홍보행사는 설 직전과 추석 직전에 집중됐다. 의원과 보좌진의 식비는 여름 휴가철이나 명절을 제외하고는 연중 일정 횟수 이상 지출됐다. 정치자금으로 지출된 비용은 대부분 정치 발전을 바라고 보탠 유권자들의 후원금이다.

대다수 의원은 술집에서의 정치자금 지출은 쉬쉬하는 분위기다. 한 초선 의원은 "당선된 뒤에는 정치자금으로 술도 많이 먹었는데, 요즘엔 그러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조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대로 문제될 게 없지 않으냐는 반응도 있다. 다른 초선 의원은 "처음엔 조심했는데 선관위에서도 정치활동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주고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식당과 주점에서도 정치자금 카드로 결제한다"고 말했다.

한 보좌관은 "밥값 술값까지 문제 삼으면 아마 국회에서 제대로 밥 먹고 다닐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회의에만 참석하고 (식사나 술자리를) 빠지면 또 욕먹지 않겠느냐"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술집에서 진행되는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너그럽지 않다. 이 같은 관행이 이어지는 한 여의도 정치가 국민에게 신뢰를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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