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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비판하다 세뇌 당한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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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비판하다 세뇌 당한 진중권"

[박동천 칼럼] 진중권의 어설픈 정의론

진중권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토로했다. (☞관련 기사 : 정의란 무엇인가)

내용 중에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넸을 때만 해도, 그것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한 개인의 도덕적 스캔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마에 '진보' 딱지 붙인 수많은 교수와 논객들이 곽 교육감을 옹호한답시고 저마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문제는 졸지에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적 스캔들로 비화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한 개인의 도덕적 스캔들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진중권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 때문에 이 문제 자체가 곽노현과 박명기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에 불과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2억 원이라는 돈거래가 사법적으로 범죄가 되는지 여부,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인지 여부 그리고 이런 문제에서 사법과 도덕이 같은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지 여부는 모두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정의 그리고 진실이라는 아이템은 최고 수준의 공공성을 함축하는 주제로 개인의 문제에 불과할 수가 없다.

"한 개인의 도덕적 스캔들에 불과했다"는 정도의 표현은 한국 사회의 도처에서 숱하게 사용되는 수사기 때문에, 이런 말에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진중권의 글이 비판할 가치가 있다고 느낀 이유는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적 스캔들로 비화했다"는 대목 때문이다. 그는 그 이유로 "이마에 '진보' 딱지 붙인 수많은 교수와 논객들이 곽 교육감을 옹호한답시고 저마다 궤변을 늘어놓"았기 때문을 든다.

그는 "수많은 교수와 논객" 중에서 <경향신문>에 칼럼을 쓴 "어느 '진보적' 교수", <프레시안>에 칼럼을 쓴 "또 다른 교수", 그리고 "ㄷ그룹 총수라는 논객"을 거론하는데, "또 다른 교수"도 나는 아닌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내가 아는 한 박동천은 "이마에 '진보' 딱지 붙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진중권의 비판이 나를 과녁으로 삼았을 확률은 몹시 낮다.

그렇지만 "곽 교육감을 옹호한답시고" 나도 한 마디 보탠 것은 사실이니, 개인적으로는 "옹호한답시고 저마다 궤변을 늘어놓"았다는 혐의의 가능성을 털기 위해서, 공공적으로는 곽노현에 대한 변론이 모두 궤변은 아니라는 정의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진중권은 "처음에는 선거 캠프의 누군가가 곽노현 교육감 모르게 한 짓일 거라 추측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2억원을 건넸다고 밝히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떤 명목으로도 그런 돈은 절대로 줘서는 안 되며, 이미 돈을 건넨 이상 곽 교육감은 마땅히 도덕적 책임을 져야 했다"고 선포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 말들을 조금 따져보자.

우선, 곽 교육감이 뭘 잘못했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부터 진중권의 입장은 불투명하다. 한편으로는 돈이 곽 교육감 모르게 건너갔다면 희망이 남을 텐데 스스로 알면서 건넸기 때문에 절망했다고 하면서, 동시에 "어떤 명목으로도 그런 돈은 절대로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돈"이 무슨 돈이라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굴려도, "어떤 명목으로도 절대로 줘서는 안" 된다고 할 만한 돈은 사퇴의 대가로 주는 돈 이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진중권은 돈이 건너갔다는 사실로부터 바로 그 돈이 "그런 돈"이라고, 다시 말해 사퇴의 대가로 지불된 뇌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돈 거래를 곽 교육감이 알았느냐 몰랐느냐가 희망과 절망을 가르는 관건일 수는 없다. 자연인 곽노현이 이 거래의 앞뒤 정황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어느 정도까지 인지하고 어떤 부분들은 캠프에게 일임했느냐는 것은 얼마나 잘못했느냐를 사정(査定)하기 위해 필요한 고려일 뿐, 처벌해야 할 잘못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가름하는 데는 부차적인 사항이다. 관건은 선거와 관련해서 캠프 차원에서 이 일이 이뤄진 것인가, 다시 말해 사퇴의 대가로 돈이 건너갔느냐 여부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건너갔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사퇴의 대가"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사퇴의 대가, 즉 "그런 돈"이라고 확정하기 위해서는 돈이 건너갔다는 데 더해서 뭔가 추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는, 진중권도 그런 결론은 무리임을 (의식적으로 아니면 혹시 무의식적으로라도) 지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돈이 건너갔다는 것 사실에 더해서 "그런 돈"임을 증명하는 추가적인 근거로 곽 교육감이 알고 건넸다는 요소를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단순히 자기가 강경선 교수를 통해 돈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그 돈이 "그런 돈"이 된다고 보면 악순환일 뿐이다. 그 돈이 "그런 돈"이라는 근거가 되려면 곽노현 자신이 "그런 돈"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한다. 그런데 곽 교육감은 자기가 "그런 돈"을 건네지 않았고 선의의 긴급 부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관해 공정성의 흉내를 조금이라도 내면서 판단하려면, 건너간 돈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파고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진중권 자신이 "아무 돈"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런 돈"은 주면 안 된다고 말한 데서부터 이미 건너간 돈의 성격이 핵심 쟁점임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떤 명목으로도"라는 문구를 덧붙임으로써 이 핵심 쟁점을 뭉개버린다.

아주 비근한 예가 바로 곁에 있다. 지금 박원순이 아름다운재단을 하면서 재벌로부터 모금한 기부금을 가지고 한나라당과 청와대와 강용석과 <○○일보>(때로는 <조선일보>라고 불리기도 한다)가 시비를 걸고 있다. 이들의 어법은 재벌이 돈을 줬을 때에는 상식적으로 뭔가 구린내 나는 뒷거래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의혹을 풍기는 방식이다.

곽노현에 대해 들이대는 진중권의 "상식"을 똑같이 들이댄다면, 여기서도 돈거래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절망을 느껴야 일관적이다. 진중권이 박원순에 관해 절망을 느끼는지는 모르겠고, 느끼든지 말든지는 그의 개인적 취향에 속하는 일이다. 단, 정의와 진실의 이름으로 공론장에서 발언하기로 한다면, 단순히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나 무슨 돈이 어떤 명목으로 건너갔는지가 반드시 핵심 관건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그리고 박명기의 사례에서는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부차적인 요소가 되지만, 박원순의 경우는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나아가 회계 처리는 투명하게 되었는지 등까지도 핵심 사항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와 다른 어떤 사례를 두고 말하더라도, 돈거래에 관해 도덕적 책임 또는 사법적 책임을 운운하면서 그 돈이 무슨 성격인지를 빼버린다면 정의를 가장한 폭력일 뿐이다. "힘이야말로 정의"라고 보는 이인화의 도착적 사유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 펴냄)가 대중적으로 의제화하는데 상당히 성공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다시 뒤져봐야 할 필요는 조희연, 정희준, 김어준보다는 진중권에게 더 많은 것 같다. 자기가 생각하는 "상식"이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의 "상식"과 어느 정도로 겹치고 있는지, 이인화를 공격하는 와중에 이인화를 슬며시 닮아버린 대목이 없는지, 그리고 혹시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가 마구 뿌려대는 세뇌의 프레임에 스스로 걸려들지나 않았는지를 검토하는 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아주 치밀한 교재는 못 되지만 통속적으로는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 ⓒ프레시안

이로써 내가 말하려는 주지(主旨)는 다 말했다. 같은 얘기의 되풀이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두 가지만 첨가하련다.

1. 진중권은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인가 아니면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인가? 이 둘을 구분하고 있는가 아니면 동일시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 그는 도덕과 사법을 자기가 편리할 때는 구분하다가, 또 자기가 편리할 때는 섞어 버리고 있다. "법정에서는 주관적 '선의'도 객관적으로 '범법'이 될 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도덕과 사법을 구분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곽 교육감은 마땅히 도덕적 책임을 져야 했다",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적 스캔들" 따위로 말하는 것을 보면, 법정에서 곽노현이 유죄 판결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점으로부터 바로 도덕적 비행을 도출하고 있다.

도덕과 법 사이에 일반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하는지에 관해 누가 무슨 학설을 주장하든지,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도덕과 법을 일단 구분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일차적으로 사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사법의 문제로 볼 때, 다시 두 차원이 있다. 하나는 공직선거법의 조문이 선거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만큼 정합적이고 타당한지이고, 다른 하나는 그 법을 가지고 후보자들의 개별적인 행태를 규제하는 검찰과 법원의 관행이 공정한가이다.

검찰이 일방적인 시나리오를 언론에 흘려서 여론을 조작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두 차례 이 지면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가식의 바람몰이가 또 시작하는가, 곽노현을 업고 사법 개혁으로 가자")

실정법 조문 자체가 이현령비현령이라서 누구를 과녁으로 선정할지에 관해 검찰의 전횡이 구조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그 글들에서 이미 했다. 검찰이 불공정하고, 실정법 조문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곽노현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항변을 진중권처럼 일축하는 태도는 사법에 국한한 고찰로서도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검찰이 적용한 법조는 "사퇴의 대가를 목적으로" 금품을 건넸을 때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검찰의 입장은 이와 같은 정황에서 돈이 건너갔다는 것만으로 대가성이 입증된다고 본다. 진중권이 취하는 입장과 정확히 동일한 것이다. 반면에 변호인단에서는 돈이 건너갔다는 사실에 더해서 사퇴의 대가였다는 입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위에 적었듯이, 재판부가 이 두 갈래 중 어떤 편을 취하느냐에 따라 판결은 좌우될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 말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대가성이 입증된다면 곽노현은 사법적으로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유죄가 될 것이다. 설사 그 경우라도 곽노현의 도덕적 책임이 어디까지가 될지는 실정법 조문이 얼마나 도덕을 장려하는지에 대한 판단과 결부되는 의미가 있다. 어쨌든 이를 여기서는 더 이상 파고 들어가지 않겠다. 다만, 대가성을 입증할 추가적인 증거가 없이 단순히 돈이 건너갔다는 정황만으로 대가성을 유추하는 판결이 나온다면, 나는 법을 빙자한 부당한 판결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2. 곽노현에 대한 이와 같은 변론이 이 일을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적 스캔들"로 만들고 있는가? 이러한 옹호론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이명박의 어이없는 말버릇을 조장하는가? 이것이 "힘이야말로 정의"라는 소리인가?

진중권의 글 중에 내 눈에 띄는-사소한-대목 하나는 "비화됐다"고 쓰지 않고 "비화했다"고 쓴 부분이다. 나는 여기서 "했다"를 쓰는 그의 한국어 감각을 지지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를 두고 누가 "진중권을 너무 씹었다고 할까봐 은근슬쩍 아부성 멘트로 물타기한다"고 평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나는 물론 비판하는 이유와 지지하는 이유가 서로 독립적이라고 반박할 것이지만, 나의 "물타기"를 읽어낸 사람은 좀처럼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언행을 토대로 내면에 정착된 "상식"을 부정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을 그동안 지탱했던 기둥 하나가 무너지는 아픔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강용석을 비호한 김형오의 모습이나 곽노현을 옹호하는 박동천의 모습이 마찬가지 진영 논법으로 비칠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공정택의 뇌물 수수를 판결 전부터 공격하던 사람이 같은 입으로 곽노현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먹인다면 자가당착처럼 보일 수 있다. "황우석과 심형래를 변호했던" (진중권에 따르면) 김어준이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껍데기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껍데기만 보기로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일은 어떻게 뒤집어씌울 수 있느냐에 따라 진상이 달라지고 만다. 정확히 이인화식, 이명박식, 그리고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식 편집의 마술에 영혼을 내맡긴 사람들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함정이 그것이다.

이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껍데기를 뚫고 진상을 파헤치려는 자세에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누가 어떤 "상식"을 들이대면서 반론을 무지르려고 하든, 선거판에서 나를 위해 그리고 대의명분을 위해 사퇴한 경쟁자에게 8개월 후에 선의의 부조를 한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순히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곽노현이 실제로 그랬다는 증거를 삼을 수는 없다. 사퇴의 대가로, 그것도 공소시효를 피하기 위해 시일을 늦춰가며 줘놓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두 갈래 가능성 가운데 어느 편이 진상이었는지는 증거와 증언과 정황을 수집해서 판단할 문제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수집한 증거와 증언과 정황을 토대로 판단하건대, 사퇴의 대가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이 사퇴의 대가였다고 생각할 자유는 인정한다. 단,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의 생각은 독자적인 사고력의 결과라기보다는 때로는-<조선일보>라고-불리기도-하는-<○○일보>의 여론 조작에 세뇌 당한 프레임으로부터 기계적으로 주입된 의견으로 보인다. "정의" 없이 "진보" 없다는 명제가 분명하게 옳은 만큼, 세뇌 당한 정의는 아무리 많아도 진보에 도움이 안 된다는 명제도 분명하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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