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천 문화재 ‘덮어버린’ 서울시

이고은기자

57년 도시정비 복개때 사라져 반세기만에 다시 드러난 석축

현대식 물길 낸다고 도로 덮어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백운동천·중학천 물길 조성사업이 초기부터 논란을 낳고 있다. 문화재 발굴조사 결과 중학천에서 조선시대 석축이 발견됐지만, 해당 지역을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물길 조성공사를 진행 중이다. “‘복원의 허울을 썼을 뿐 개발주의의 산물’로 비판받는 청계천 복원공사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조선말기 중학천이 흐르던 지금의 중학동 일대 모습. 호안석축이 이어진 모습과 뒤로 동십자각이 보인다. 1907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조선말기 중학천이 흐르던 지금의 중학동 일대 모습. 호안석축이 이어진 모습과 뒤로 동십자각이 보인다. 1907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청계천의 상류인 백운동천과 중학천은 경복궁의 동·서편을 흐르는 역사적 물길이다. 하지만 1957년 도시 정비 및 교통 편의의 목적으로 복개된 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37년 도심정비 목적으로 청계천을 덮기 시작했던 일본식 개발주의의 연장선상이었던 셈이다.

문화재 발굴 전문기관인 한울문화재연구원은 지난 8월28일부터 10월16일까지 중학천 지역을 발굴조사한 결과, 복개된 땅 아래에 잔존하던 조선시대 장대석 호안석축(물가에 돌로 쌓은 벽)과 일제강점기 견치석 호안석축을 발견했다. 조선 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생활 유물들인 자기와 도기, 와편(기와조각) 등 다양한 유물들도 출토됐다.

그런데 지난 9월22일 열린 지도위원회에서는 “다시 잘 복토해 물길 하부에 보존될 수 있도록 한다”고 정리했다. 이 결과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최종규 한울문화재연구원 전통연구실장은 “완전한 복원을 하려면 많은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들 것”이라며 “문화재적 가치는 있으나 (물길) 구조물들이 하중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유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복토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중학천은 사라지고 현대식으로 조성된 새 물길이 나게 된 것이다. 결국 흙더미에서 숨쉬던 석축과 유물들은 잠깐 모습을 드러냈지만, 국민에게 공개되지 못한 채 무모한 개발에 의해 다시 흙 속으로 사라졌다.

청소년 문화보호단체인 달항아리 문화학교의 박동 교사는 “5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중학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며 “서울시는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복원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운동천이 이어지는 지역도 문화재 손실이 우려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옥인동 등 서촌 일대인 이곳은 이상, 이중섭, 이상범 등 예술가들의 집터가 남아있어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골목 하나, 길 하나가 문화유산인 서촌 지역이 물길 조성공사로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백운동천·중학천 물길 조성으로 “광화문광장, 청계천 등과 더불어 역사와 문화 관광의 도심공간이 창출돼 수도 서울의 브랜드 가치가 향상되고, 1200만 관광객 유치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600년간 도읍을 유지한 서울은 그 자체가 문화재다. 최근 서울시내에서 실시된 발굴조사마다 보물급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맛골인 종로 청진지구에서 명기 백자가 출토됐고 서울시 신청사 건립부지에서는 보물급 유물인 불랑기자포 1점이 출토됐다. 아직도 곳곳에 대량의 문화재가 매장돼 있다. 이 땅에 숨어있는 유물들은 세상과 만나야 한다. 역사의 진실찾기는 우리의 가장 고귀한 숙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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